애플은 이동통신사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다. 일반적으로 휴대폰을 판매할 때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업체는 소비자들에게 보조금을 함께 제공한다. 하지만 애플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조금을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통신사들은 아이폰을 많이 팔아놓고도 보조금 탓에 적자를 보기도 했다.

◆‘슈퍼갑’ 애플

휴대폰 제조업체에 이동통신사는 ‘슈퍼갑(甲)’으로 통한다. 대부분 소비자들이 통신사 서비스에 가입하면서 휴대폰을 구입하기 때문에 휴대폰 제조업체에 있어 통신사는 가장 큰 고객이다. 제조업체로선 통신사가 어떤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우는가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진다. 통신사들이 원하는 요구를 제조업체들이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적인 것이 통신사 특화 모델이다. 같은 휴대폰을 내놓더라도 통신사들이 원하는 대로 사양을 바꿔 제품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통신사들의 입김이 강한 미국 시장에서 이런 일이 잦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의 초기 모델인 갤럭시S는 통신사에 따라 캡티베이트(AT&T), 바이브런트(T모바일), 에픽4G(스프린트), 패시네이트(버라이즌)란 모델로 판매됐다. 갤럭시S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사양이 조금씩 다르고 이름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애플은 전 세계 모든 국가, 모든 통신사에 동일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제품 외관에 통신사 로고도 박아넣을 수 없다. 모델명도 아이폰으로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하다. 내부 소프트웨어 수정도 용납되지 않는다. 통신사들의 자체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앱)도 사전에 설치할 수 없다.

◆‘2위 통신사’와 주로 계약

애플이 ‘독자노선’을 걸을 수 있는 까닭은 사용자들의 높은 충성도와 이에 따른 시장에서의 제품 영향력 덕분이다. 여기에다 ‘2위 통신사’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자사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방식을 써왔다.

예컨대 2007년 미국 시장에선 AT&T에만 아이폰을 공급한 것을 비롯해 프랑스 오렌지, 영국 보다폰과 같은 2위 사업자와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에서도 2009년 KT를 통해서만 제품을 내놨다.

1위 통신사들은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애플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지난해 1월 미국 1위 통신사인 버라이즌과 한국 1위인 SK텔레콤 등 각국 1위 사업자들도 아이폰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이폰 팔수록 통신사 수익 줄어”

미국에서 아이폰5의 출고가격은 649달러(16GB 모델 기준)지만 통신사와 2년 약정 계약을 맺으면 199달러에 구입할 수 있다. 가입한 고객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조금은 애플이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통신사로선 판매 수익이 그만큼 낮아진다.

아이폰4S가 나온 직후인 지난해 4분기 미국 AT&T와 버라이즌은 각각 67억달러, 2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바클레이즈 캐피털의 애널리스트 제임스 래트클리프는 “아이폰이 잘 팔릴수록 통신사의 수익은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