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켰을 때 멋진 배우가 입체 홀로그래피 영상으로 툭 튀어나와 연기를 한다면 얼마나 실감나고 재미있을까. 평소 흠모하던 여배우가 불쑥 나와 새로 나온 맥주로 건배를 권하거나, 갖고 싶던 자동차가 눈앞에서 굉음을 내고 입체적으로 달린다면 당장 지갑을 열고 싶지 않겠는가. 장거리에 있는 애인과 바로 앞에서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짜릿한 경험도 가능하다.

‘디지털 홀로그래피’가 바로 이를 가능케 하는 미래 유망기술이다.

◆차세대 3D기술, 디지털 홀로그래피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디지털 홀로그래피는 파동의 간섭현상을 이용해 물체의 입체정보를 기록하는 기술을 뜻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홀로그램’을 발전시킨 형태다. 스크린이 아닌 공간 속에 실사와 똑같은 상(象)을 재현해 한층 진화된 입체영상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양쪽 눈의 시차를 이용해 사물 일부분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3D와 달리 홀로그래피는 시차를 조절하지 않아도 360도 어느 각도에서 봐도 온전한 입체영상을 제공한다. 안경이나 특수 스크린도 필요 없어 차세대 3D 기술로 꼽힌다.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현실감이 뛰어나 2D 영상산업이나 스테레오 3D산업보다 응용 분야가 광범위하다는 점도 홀로그래피의 매력이다.

영상회의나 건축설계, 전자책 등은 물론이고 가까운 미래에 디스플레이·보안·유통·교육·문화 분야에 두루 응용할 수 있다. 나아가 의료 및 보건 분야, 비행 시뮬레이션, 군사작전 훈련에도 홀로그래피 서비스가 적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첨단 뉴미디어의 꽃으로 부상하는 이 영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잔잔한 물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동심원을 그리면서 바깥으로 전달돼 나가는 원리를 이해하면 된다. 전자기파의 일종인 빛도 이와 같은 형태로 서로 부딪쳐 굴절돼 ‘간섭 현상’을 일으키면서 파동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빛은 더 밝아지거나 더 어두워지거나 하는 간섭무늬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물체가 반사한 빛이 간섭을 통해 나타내는 파장과 진폭 등에 대한 정보를 인식해 3차원 입체 영상으로 구현하는 것이 홀로그래피 기술이다. 파장은 색깔을 나타내고 진폭은 명암을, 위치 차이는 올록볼록한 입체감으로 구현된다. 마치 해저에 초음파를 쏜 후 다시 되돌아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를 보고 바다의 깊이와 해저 지형 등을 알아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 무늬를 기록한 필름을 ‘홀로그램’이라고 부르고, 여기에 빛을 다시 투영하면 사물이 입체 영상으로 재현된다. 즉 홀로그램은 인간이 직접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동일하며 실제 물체를 재현하는 가장 이상적인 기술이다.

◆태동하는 블루오션…선진국 각축

홀로그램은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기술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세포에 대한 3차원 재현이 가능한 홀로그램 현미경, 복제를 방지할 수 있는 홀로그램 보안카드, 2차원 사진이 아닌 실제와 같은 고선명의 홀로그램을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 등 다양한 제품 개발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위조방지를 위해 5만원권 지폐에 홀로그램이 이미 적용돼 있다. 신용카드, 신분증, 여권도 마찬가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첨단과학기술, 산업, 의학, 군사적 응용분야 등 거의 모든 부문으로 적용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최근 들어 각 국가에서는 3D 다음 단계를 홀로그래피 기술로 보고 상용화 및 기술접목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일본은 총무성 산하 정보통신연구기구(NICT)를 중심으로 상용화 중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일본은 2016년 홀로그래피 TV를 시장에 내놓고,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해 홀로그램 방송을 추진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한 예산은 무려 45억달러(약 5조5000억원) 규모다.

독일의 시리얼은 2007년 세계 최초로 20인치 홀로그래픽 프로토 타입 디스플레이 장치인 ‘VISIO20’을 개발했고, 영국의 퀴네티큐는 고해상도 홀로그램 입체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만들었다. 미국의 제브라 이매진, 유럽의 게올라 등은 이미 홀로그래픽 프린터를 개발했다. 제작된 홀로그래픽 콘텐츠는 건축, 군사,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전시 및 문화, 예술 등에 활용되고 있다.

◆‘포스트 3D’ 기술개발 위해 지원 절실

홀로그래피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응용 제품을 개발해 막대한 수입을 창출하고 있는 외국과 달리 국내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이미 유럽·일본에서는 홀로그래피를 ‘포스트 3D’로 보고 10년 이상 연구 및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 산업 환경은 기술개발 초기단계로 아직 제품 개발 사례가 없다. 100% 수입에 의존한다. 홀로그래피 기술의 자체 개발 없이 해외 기술에 의존한다면, 향후 다가올 홀로그래피 서비스를 위해 막대한 국고손실이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연구 선점을 해외에 내주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박차를 가하면 아직 패러다임 주도가 가능한 시점이라고 분석한다. 리스크가 있더라도 정부는 ‘3D의 다음’을 준비해야 하며, 인력 양성에 집중하는 등 저변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홀로그래피는 20~30년 뒤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차세대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의료·교육·에너지·보안·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열어갈 홀로그래피 기술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의 꾸준한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SF 영화가 현실이 되는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인 2022년에는 실사와 같은 상(象)을 공간 속에 완벽히 재현해 내는 ‘아바타’ 속의 입체영상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첨단 홀로그램의 등장을 기대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상 속의 산물로 여겨졌던 이 기술들은 지금 해외에서 먼저 현실화를 앞당기고 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