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에서 ‘애플이 삼성에 유리한 증거를 파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담당 판사의 결정이 나왔다. 21일(이하 현지시간) 예정된 삼성전자와 애플 변호인들의 최후 변론을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삼성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의 대단한 성공”

포천 등 외신에 따르면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루시 고 미국 새너제이 연방북부지방법원 판사(사진)는 지난 19일 결정문을 통해 “삼성전자뿐 아니라 애플도 상대방에게 유리한 증거(이메일)를 파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평결에 참조하라”고 배심원들에게 통보했다.

이에 앞서 폴 그레월 연방 치안판사는 특허 소송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25일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여 “삼성전자가 증거 보존 의무를 위반하고 애플에 유리할 수 있는 증거를 삭제했다”고 결정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배심원들에게 신뢰할 수 없는 회사로 비쳐져 불리한 평결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고 판사의 이번 결정에 따라 증거 보전 의무 위반에 대해선 삼성전자와 애플은 대등한 입장이 됐다. 지식재산권 전문가 플로리언 뮐러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이번 결정은 ‘대단한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복잡한 평결지침과 평결항목

고 판사는 21일 열리는 최후변론 이후 배심원들에게 삼성전자와 애플이 각각 주장하는 특허침해와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포함된 ‘평결지침’과 실제 평결항목이 기재된 ‘평결양식’을 나눠준다. 하지만 이 평결지침이 100쪽에 이르고 평결항목도 22쪽 36항이나 되는 데다 내용이 복잡해 변호사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얘기가 법원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예컨대 20일 공개된 평결양식 초안의 첫 항목은 갤럭시S2 등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21개 제품 각각이 애플의 특허를 위반했는지를 표기하도록 돼 있다. 이 기능은 아이폰에서 손으로 디스플레이 화면을 터치해 이동시키다가 가장자리에 도달할 경우 즉각 튕겨내는 기술이다.

평결지침은 고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나눠주면서 직접 읽을 예정인데, 읽는 데만 2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내용이 방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9명의 배심원들은 22일부터 평결지침에 따라 평결양식의 각 항목을 만장일치로 작성해야 한다.

◆갤럭시 넥서스 심리도 진행

미국 워싱턴 연방순회항소법원에서 열린 ‘갤럭시 넥서스’ 심리도 20일 열렸다. 갤럭시 넥서스는 6월29일 판매금지 가처분을 받았으나 삼성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이 현재 유예된 상태다.

애플 측 변호사는 ‘통합 검색’ 기능을 내장한 갤럭시 넥서스는 애플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며 판매금지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 변호인은 “아이폰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독보적인 반면 갤럭시 넥서스 판매량은 미미해 애플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올해 2분기(애플 기준 3분기) 아이폰 판매액이 162억달러였지만 갤럭시 넥서스는 1·2분기를 합쳐 2억5000만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통합 검색 기능이 판매의 핵심 요소라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삼성 측은 “소비자들은 삼성 스마트폰에 그런 기능이 있는지 모른다”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내장한 스마트폰을 살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이라고 반박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