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KT다. 1600만 KT 휴대폰 가입자 중 절반이 넘는 87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름과 주민번호는 물론 기종, 요금제, 요금합계, 기기변경일까지 속속들이 새어 나갔다. 휴대폰 회사에 개인정보가 이것 말고 뭐가 또 있겠나 싶을 정도다.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 약정 두 달 남으셨죠” “최신 스마트폰으로 갈아타세요” 같은 전화가 걸려온 이유가 이제야 밝혀진 것이다. 유출된 정보가 범죄 도구로 악용되지나 않았으면 다행이려니 여겨야 할 판이다.

경찰청 수사결과 이번 사건은 10년 경력의 전문 프로그래머가 주도한 조직적 범죄라고 한다. 그러나 KT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개인정보를 소량씩 장기간에 걸쳐 빼내 이상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보안기술 결함이나 감시 태만이 없었다면 870만명의 정보가 새는 것을 5개월씩이나 몰랐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 통신망을 관리하는 KT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없다.

개인정보 유출이 밥 먹듯 일어나니 이제는 누구나 만성이 돼 버렸다. 최근 4년 새 해킹으로 유출된 개인정보는 네이트·싸이월드(3500만명) 옥션(1860만명) 등 큰 건만 합쳐도 1억명이 넘는다. 국민 1인당 최소 두 번씩 당한 셈이다. 대규모 유출사고가 터져도 피해 고객만 있을 뿐 해당 업체는 몰랐다면 그만이다. 법적 배상책임도, 도의적 책임도 없다. 허울 좋은 IT강국의 현주소다. 이석채 회장은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