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TV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버드랜드소프트웨어 사무실은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에 있다.

빽빽한 빌딩 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버드랜드소프트웨어는 인근 가정집 반지하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유명 재즈밴드 노래 제목에서 사명을 착안한 버드랜드소프트웨어는 KAIST 출신 최정이 대표가 여러 번의 창업과 실패 끝에 만든 회사로, 현재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용 미디어플레이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지난 2009년 창업한 엘타임게임즈(L.time games)는 엔씨소프트에서 '리니지2' 등을 기획한 백성현 대표와 박상훈 아트디렉터, 넥슨 출신 김석중 프로그램팀장 등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다.

내년 상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엘타임게임즈의 3차원(D) 액션 롤플레잉게임(RPG)은 국내 최대 게임사인 넥슨의 인기작 '던전앤파이터'와의 경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박재찬 엘타임게임즈 경영지원팀장은 "블루홀스튜디오의 '테라'가 10만원짜리 고급 참치회라면 우리는 부분유료화를 통해 3만5천원짜리 참치회, 이용자에게 부담없는 게임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픽케어(Speakcare)가 최근 선보인 스피킹맥스(speakingmax) 프로그램은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전화영어나 e-러닝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뉴욕 등 미국 대도시와 하버드, MIT 등 유명 대학에서 직접 현지인들을 촬영해 듣기와 말하기를 공부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스피킹맥스는 특히 게임 요소를 접목해 코스마다 배지와 아이템을 모으고 이를 트위터 등을 통해 알릴 수 있도록 해 흥미도를 높였다.

스픽케어는 최근 삼성전자의 사내 임직원 교육에 프로그램을 공급하기로 계약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B2B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버드랜드소프트웨어와 게임회사인 엘타임게임즈, e-러닝업체인 스픽케어. 전혀 다른 분야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이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국내 최초 초기 투자 전문 벤처캐피탈인 본엔젤스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점이다.

이들을 비롯한 8개 벤처업체 기업인들이 지난 3일 한자리에 모여 벤처인들의 고민과 희망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장병규 대표와 본엔젤스 = 버드랜드소프트웨어가 세들어 사는 선릉역 인근 가정집의 1∼2층은 본엔젤스의 사무실이다.

3일 오후 20명이 넘는 20∼30대 젊은이들이 거실을 개조한 본엔젤스 사무실 1층에 모였다.

일반회사에서는 아직 평사원이나 대리, 과장 직급에 해당하는 나이지만 모임에 참석한 이들의 명함에는 대부분 최고경영자(CEO) 내지는 최고재무책임자(CFO), 이사 등의 직급이 적혀 있다.

잠시 후 이날 모임에 참석한 8개 벤처업체가 각각 자기 회사에 대해 간략한 프리젠테이션(PT)을 실시했고, PT가 끝날 때마다 질의응답과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의 보충 설명이 이어졌다.

주말도 없이 매일 야근에 매달리는 이들 벤처업체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본엔젤스가 개최하는 투자사 모임 때문이다.

본엔젤스는 1년에 두 차례 투자사들을 초대해 그동안의 성과를 소개하고 투자사 간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날 모임에는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와 강석흔 이사, 송인애 이사와 함께 본엔젤스가 초기 투자한 동영상 필터링 업체인 엔써즈, 최근 NHN과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한 지노게임즈(GINNOGAMES), 소셜 커머스 메타사이트 1위인 '쿠폰모아'를 운영하는 씽크리얼스 등 총 8개 벤처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장 대표는 "어차피 이 바닥(벤처)에 들어온 이상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또다시 벤처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업이 다르더라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서로 대화하고 고민을 들어보는 것이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모임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NHN·엔씨소프트·넥슨 = 이날 모인 벤처인들에게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NHN과 엔씨소프트, 넥슨 등 이미 성공한 벤처기업 출신들이 많다는 점이다.

엘타임게임즈가 엔씨소프트와 넥슨 출신들이 만든 회사라면 씽크리얼스는 김재현 대표 등 4명의 공동창업자 중 3명이 NHN, 1명이 다음커뮤니케이션 출신이다.

지노게임즈 서동현 기획팀장은 넥슨의 국민게임 '카트라이더'를 만든 멤버고, 박원희 CEO와 김창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엔씨소프트가 인수한 게임 개발사인 넥스트플레이에서 만나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왜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기업을 뛰쳐나와 미래가 불투명한 벤처 창업에 뛰어들었을까.

모임에 참석한 한 벤처인은 "이미 NHN과 엔씨소프트 등과 같은 회사는 벤처라기보다는 대기업화되면서 조직의 참신함이나 역동성이 떨어졌다"며 창업을 택한 이유를 에둘러 설명했다.

왜 벤처일까.

벤처 1세대로 네오위즈와 검색엔진 '첫눈'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장병규 대표는 벤처의 삶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에 많은 분이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택하는 상황에서 벤처라는 삶은 굉장히 소수의 삶이고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삶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만들고 도전하고 실패하면서 느낄 수 있는 좋은 사람들과의 팀워크, 그런 것들은 대기업에서 느끼기 어려운 것이고 돈으로 쉽게 환산하기 어렵지요.

그런 삶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선호하는 사람들도 분명 세상에 있습니다.

"
진부한 단어일 수 있지만 사명감 역시 이들을 벤처 창업으로 이끈 이유 중 하나다.

불법 동영상 유통을 원천차단할 수 있는 동영상 필터링 기술을 개발한 엔써즈 김길연 대표는 "그저 코드를 짜고 기술개발만을 알던 공대생들이 웹하드 등 고객사를 찾아다니며 영업하다 보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회 전체적으로 꼭 필요한, 좋은 일이라고 설득한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실패 = 지난해 스마트폰 혁명이 불면서 제2의 벤처붐이 일어났다.

언론은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이른바 '대박을 친' 사례를 앞다퉈 소개하면서 벤처 창업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

그러나 여전히 성공한 회사보다 실패한 회사를 찾기가 쉬울 정도로 벤처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모임에 참석한 벤처인들은 그러나 결코 벤처의 성공 확률이 낮지 않다고 강조한다.

최정이 대표는 "대기업에 들어가 소위 임원에 이르는 이들은 1% 미만이라고 한다.

100명 중 겨우 한 명이 성공을 거두는 셈인데, 벤처기업을 창업해 성공할 확률은 이보다 결코 낮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첫 번째 창업에서 바로 성공을 거두는 벤처기업은 드물다.

실패 경험을 토대로 제2, 제3의 도전을 하다 보면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실패'를 하는 것이라고 장병규 대표는 설명했다.

장 대표는 "본엔젤스는 기업이 망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만약 창업주나 임직원들의 고집으로, 또는 독단적인 판단 때문에 망한 회사에는 다시 투자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실패'를 한 기업, 실패 과정에서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얼마든지 제2, 제3의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벤처 창업을 가로막는 장애물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동안 수차례 제기된 지적이지만 이날 모임에서도 가장 반시장적인 규제로 연대보증제가 꼽혔다.

실제 엔써즈 김길연 대표는 엔써즈 창업 전 음성 인식 기술로 창업했다가 1억원에 가까운 빚을 지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장병규 대표는 "연대보증 문제가 벤처 창업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후배들에게도 빚만 안 지면 세 번 도전할 수 있으니 절대 연대보증은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이미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장 대표와 본엔젤스는 왜 벤처 투자라는 어려운 길을 걸어갈까.

장 대표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후배들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투자를 받는 입장이지만 이 친구들이 성공해서 다시 후배들에게 투자하는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pdhis9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