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中企 '용병 전성시대'
[고용 미스매치를 풀자] (2) 국내인력 외면 '빈자리'…R&D분야 외국인 3년새 48% 늘어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지앤지커머스는 지난해 독자 기술로 개발한 비주얼 상품 검색엔진 '캔버시(canvasee)'가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몰인 이베이의 운영 프로그램으로 채택되는 쾌거를 이뤘다. 검색엔진 기술의 우수성이 대내외에 입증된 만큼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려고 했던 이 회사는 예상치 못한 딜레마에 빠졌다. 영어에 능통한 해외 마케팅 인력을 단 한 명도 뽑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영일 대표는 "구인광고를 내고 백방으로 수소문하고,대기업에 못지않은 급여도 제시했는데도 전문 인력들이 끝내 우리 회사를 외면했다"고 털어놓았다.

지앤지커머스는 결국 석사 또는 학사 출신으로 2년 정도의 경력을 지닌 인도인 4명을 채용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최근 일부 직원의 사표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도인 4명과 미국인 1명을 추가로 채용키로 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다. 채용이 끝나면 이 회사는 전체 직원의 3분의 1가량이 외국인으로 채워지게 된다.

◆블루칼라에 이어 화이트칼라도 '용병시대'

청년 구직자들의 '중소기업 취업 기피' 풍조는 국내 산업 현장에 '용병 시대'를 열고 있다. '블루 칼라'(생산직)는 물론 '화이트 칼라'(사무 전문직) 분야에서도 외국인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6년 말 2만4501명 수준이던 외국인 전문인력 체류자 수는 지난해 말 3만6393명으로 무려 48.5%나 증가했다. 연구 · 개발(R&D) 해외 마케팅 등 고급 인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채용에 실패한 중소기업들이 해외에서 대안을 찾은 결과로 분석된다.

남동공단에 있는 중전기 제조업체인 중원전기는 지난해 R&D 인력 13명 중 3명이 창업과 대기업 이직을 이유로 갑자기 사표를 낸 뒤 아직도 후임자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친환경 차단기 개발 업무를 수행할 만한 '스펙'을 갖춘 국내 이공계 출신 대졸자들이 중소기업이란 이유로 입사를 꺼린 탓이다. 결국 인력 공백으로 친환경 차단기 개발이 1년 이상 늦춰지자 중원전기는 인도 기술자를 초빙하기로 했다.

실제 외국인 전문인력의 비자 발급 등을 주관하는 한국산업기술진흥원과 교육과학기술부의 담당부서인 국제협력지원팀에는 최근 들어 중소기업들의 인력 요청 및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외국인 전문인력의 체류비 등을 지원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사업평가센터의 경우 2월 중순 현재 중소기업들의 신청 건수가 올해 할당량(135명)의 4배에 육박하는 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진공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요청하는 인력은 영어 실력과 기초 과학기술 능력을 갖춘 인도인이나 일본 미국 등 선진국의 은퇴자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말했다.

◆"외국인 없으면 당장 공장을 세워야 할 판"

어렵고(Difficult),위험하고(Dangerous),더러운(Dirty) 이른바 '3D'분야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돌릴 최소 생산 인력마저 부족할 정도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대기업 선호현상과 고학력화 등으로 국내에선 이 분야에서 일할 인력 공급이 아예 끊긴 탓이다. 빈 자리는 외국인이 채우고 있다. 특히 국내 구직자들의 '기피 1순위'로 꼽히는 염색 · 피혁 봉제 금형 분야는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이 점령한 상태다.

염색 피혁업체인 P사 대표는 "현재 전체 근로자의 50% 이상이 외국인 근로자"라며 "내국인 고용자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외국인 고용 허용 인원을 늘리기 위해 생산 능력은 보지 않고 뽑은 주부와 노인들"이라고 말했다.

구인난에 이어 높은 이직률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외국인 고용 허용 인원을 늘리기 위해 회사를 쪼개는 등 편법을 동원하는가 하면,외국인 불법 체류자 고용도 불사하고 있다. 경기 수원에 있는 A섬유업체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법인을 4개로 분할해 구청에 사업신고서를 냈다. 회사 관계자는 "법인이 4개인 것처럼 '둔갑'시켜야 그만큼 외국인을 더 많이 채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편법인 것은 알지만 회사 문을 닫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반월시화 공단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의 대부분은 불법 체류자 고용으로 한두번씩 벌금을 냈을 것"이라며 "담당 구청이나 경찰도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에 최근 들어선 단속을 줄이고 있다"고 전했다.

◆'용병은 인력난의 임시방편에 불과'

외국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국내 실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외국인 근로자 수(쿼터)를 대폭 축소한 뒤 이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한 봉제기업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를 확보하기 위한 업체 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들의 몸값이 1년여 만에 20~30% 뛰었다"며 "월평균 150만원씩 챙겨주고 있는데도 혹시 그만둘까봐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R&D 등 전문 분야의 경우 내국인 대신 외국인을 채용한 데 따른 유 · 무형의 손실이 3D 업종보다 훨씬 크다고 중소기업들은 지적한다. 외국인 전문 인력의 경우 계약 기간이 1~3년에 불과해 업무의 지속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직원 간 마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특히 보안이 취약한 중소 벤처기업의 경우 외국 인력의 퇴사가 기술 유출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자부품 제조업체 K사가 바로 그런 사례다. 이 회사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출신 연구 인력이 '모친이 위독하다'는 핑계로 출국한 뒤 핵심 기술을 경쟁사에 빼돌린 탓에 연매출이 20% 이상 줄어드는 피해를 입었다.

모 대표는 "연봉을 더 주더라도 내국인을 고용하는 게 장기적으로 회사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경력 관리 등 측면에서 중소벤처기업을 꺼리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젊은층의 도전정신이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손성태/오상헌 기자/정은실/김지현 인턴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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