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신드롬'이 한국 휴대폰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아이폰은 미국 애플사가 만든 스마트폰(PC 기능을 갖춘 휴대폰).2007년 6월 첫선을 보인 이후 전 세계적으로 3400만여대가 팔려 나간 히트 상품이다. 소비자들의 호감도와 충성도가 높아 애플의 아이폰 판매이익률이 30%를 넘나들 정도다. 미국에선 '아이포니악(iPhoniac:아이폰에 열광하는 사람)'이란 신조어까지 나왔을 정도다.

그 아이폰이 28일 한국시장에 상륙한다. 국내 공급회사인 KT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예약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아이폰 개통식을 연다. 다양한 퀴즈 이벤트와 가수 공연을 곁들이며 아이폰 열기를 한껏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KT는 최근 엿새 동안 진행한 아이폰 예약 판매에서 5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다.


아이폰의 힘,어디에서 나오나

아이폰은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 터치'에 전화 기능과 카메라,GPS(위성위치확인 시스템)를 더한 제품이다. 터치스크린 화면을 만질 때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직관적 사용자 환경(UI) 등이 장점이지만 하드웨어 성능만 놓고 보면 아이폰에 버금가는 제품들도 없지 않다.

아이폰 돌풍의 핵심은 '앱스토어'다. 앱스토어는 애플의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장터로,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자신들이 만든 유 · 무료 프로그램을 올려놓는 곳이다. 아이폰 판매량이 늘면서 개발자들도 몰려들어 이미 이곳엔 10만개가 넘는 프로그램이 올라와 있다. 아이폰 사용자들이 아니고선 이처럼 풍부한 프로그램을 마음껏 즐길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아이폰의 선전을 문화적 측면에서 분석하기도 한다. 제품을 공개하기 전까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애플의 전략이 적절한 신비주의 효과를 자아낸다는 해석도 있다. '혁신 전도사'란 별칭이 붙은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후광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광고회사 마틴 에이전시는 "애플은 자사 제품을 숭배의 대상물로 만드는 몇 안 되는 회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이폰이 어디서나 잘 팔리는 건 아니다. 중국의 2위 이동통신사인 차이나유니콤이 지난 10월 말 아이폰을 들여온 이후 첫주 판매량은 5000대에 그쳤다. 당초 예상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차이나유니콤의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500달러로 비싼 편이고,중국 소비자들에게 스마트폰은 아직 생소한 탓이다.

국내 스마트폰 바람 거세진다

아이폰의 국내 진출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배터리를 따로 빼내어 충전할 수 없고,DMB(디지털 멀티미디어방송)를 볼 수 없는 등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해 초반 돌풍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아이폰 출시가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관측에는 대부분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계열 등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이 아이폰 대항마로 다양한 신제품을 예고한 가운데 이동통신회사들도 무선 인터넷 요금 인하에 착수했다. 노키아,모토로라,소니에릭슨,리서치인모션(RIM) 등도 내년 상반기 국내 시장에 스마트폰을 출시하기로 했다. 업계는 전체 휴대폰의 1~2%에 불과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내년엔 10%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업체들이 향후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스마트폰 개발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전자가 최근 스마트폰사업부를 신설하며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밝힌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년부터는 구글의 모바일 운영시스템(OS)인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도 한꺼번에 나올 예정이다.

스마트폰,놀거리와 일거리가 승부처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시장의 성패(成敗)는 소프트웨어에서 갈릴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손 안의 PC'로 불리는 스마트폰은 놀거리,즉 유용한 콘텐츠가 뒷받침될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PC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 OS로 90%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피스'라는 강력한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판다'는 말은 이미 앱스토어의 성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독자적으로 온라인 애플리케이션 스토어 구축에 나섰고,관련 콘텐츠 확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독자적으로 개발한 모바일 플랫폼(OS를 포함한 통합 소프트웨어 시스템) '바다'를 내놓는다. 외부 개발자들이 바다에 맞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DK)도 공개할 계획이다. 삼성식(式)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며 개발자들이 일할 공간을 열어주는 셈이다.

애플식 폐쇄구조는 위험할 수도

스마트폰 시장은 열린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 "애플의 아이폰이 과거 PC 시장에서 매킨토시의 전철을 밟아 고립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는 글로벌 정보기술(IT) 시장에 디자인과 기술혁명을 불러일으켰지만,다른 업체들에 관련 소프트웨어 사용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마니아층만 이용하는 제품으로 전락했다.

소프트웨어 역량은 강하지만 폐쇄적인 애플의 경영 전략은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개방형 OS인 안드로이드 등이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면 애플 아이폰도 결국 소수만을 위한 '틈새 상품'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뉴스위크는 "MS의 윈도가 그랬듯 구글 안드로이드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받아들이며 시장을 넓힐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면서 "시장조사 업체인 가트너는 안드로이드가 2012년부터 아이폰 OS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