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노윤호씨(37)는 요즘 일을 하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세련된 디자인에 터치기능까지 갖춘 새 휴대폰이 마음에 들어 전화가 온 것도 아닌데 자꾸 눈길이 간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노씨는 휴대폰을 바꾸는 것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3년째 써온 휴대폰을 몇 번이나 바꾸려 했지만 쓸만한 제품은 모두 010으로 번호를 변경해야 한다는 말에 마음을 접고는 했다. 영업을 하는 노씨는 휴대폰을 바꾸는 것보다 거래처 관리를 위해 기존 011 번호를 그대로 쓰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며칠 전 번호를 바꾸지 않고도 쓸 수 있는 인기 터치폰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망설임없이 새 휴대폰을 장만했다.

음성 통화 기능이 중심인 2세대(G) 휴대폰들이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판매량이 1000대에 육박,3G폰에 버금가는 판매성과를 올리는 히트작들이 연이어 나온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빠르고 제품 수도 많은 3G 휴대폰이 시장의 대세가 된 것을 감안하면 이색적인 일이다. 터치,고화질 등 최신 기능을 접목한 프리미엄 2G 신제품이 출시되자 010으로 번호를 바꾸기 싫어하는 01X 번호 사용자들이 대거 휴대폰을 구매하면서 빚어진 기현상이라는 분석이다.

◆블루오션 된 프리미엄 2G폰

2G폰 인기는 터치폰,슬림폰 등 프리미엄 제품이 대거 출시된 9월 이후 두드러진다. 삼성전자의 터치폰 햅틱착(SCH-B900)은 하루 평균 800여대가 팔릴 정도다. 3G폰 중 가장 잘나가는 아몰레드의 하루 판매량이 1000대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다. 출시 두 달 남짓한 기간의 누적 판매량도 4만2000대를 넘어섰다. 팬택계열의 터치폰 듀퐁실버(IM-U510S)도 출시 두 달 만에 4만1000대나 팔렸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11.4㎜ 두께의 슬림 스타일(SCH-S540)폰과 LG전자의 롤리팝(SV800)폰도 하루 1000대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올 한 해 출시된 휴대폰 중 2G폰의 비중은 20%에도 못미친다. 3세대 서비스 확산에 전력하고 있는 KT는 아예 신규 2G폰을 한 모델도 내놓지 않았다. 2G폰은 틈새시장 정도로 보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요즘처럼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면 틈새가 아니라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게 휴대폰 제조회사들의 생각이다. 제조사 관계자는 "휴대폰 한 모델당 판매량에서 3G보다 앞서는 2G폰이 많아졌다"며 "효율성만 따지면 신제품 경쟁이 치열한 3G 시장보다 프리미엄 2G폰이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짜폰도 싫어하는 01X 사용자

"터치할까? 지켜줄까?"

SK텔레콤 광고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01X 번호를 지켜야할지,신형 3세대 터치폰으로 바꿔야 할지 고민하는 소비자를 보여준다. 01X 번호 사용자들이 3세대 휴대폰을 구매하면 번호를 010으로 바꿔야 한다. 이 광고는 T를 이용하면 쓰던 번호를 지키고 터치폰도 쓸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 내용이다. 2G폰의 인기는 광고 카피처럼 01X 번호 사용자들의 지지가 주된 요인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7월 말 기준으로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01X 번호 사용자는 1140만명에 달한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00만명 이상 줄었지만 아직도 전체 휴대폰 가입자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2G폰 구매자의 대다수는 기존 번호를 유지하기 위해 보조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신규나 번호이동 대신 기기만 바꾸는 기기변경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