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독일 과학은 세계 최첨단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독일인이었고 닐 암스트롱을 달에 보낸 폰 브라운도 독일 과학자였다. 만약에 히틀러가 과학기술에 좀 더 과감하게 지원했었더라면,유대인 과학자를 쫓아내지 않고 활용했더라면,독일은 지금 원자력과 우주개발을 독점한 초강대국이 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독일 과학자를 활용해 2차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일어선 국가는 미국과 소련이었다. 이는 과학기술정책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여러 역사적 사실 중의 하나이다.

정부가 여러 번 바뀌는 중에도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일관되게 강조되었으며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지속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현 정부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잘 인지해 세계금융위기 속에서도 과학기술 예산을 대폭 늘려 2010년도 연구개발 예산으로 지난해보다 10.5% 늘어난 13조 6000억원을 배정했다.

현 정부 들어서 과학기술부 중심으로 진행돼 오던 과학기술 정책 및 행정제도의 조정이 분산,다원화됐다. 과학기술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합쳐 교육과학기술부가 됐고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가 합쳐 지식경제부가 됐다. 과학기술 정책의 총괄기획 · 조정의 리더십과 권한을 부여했던 과학기술 부총리 제도와,과학기술정책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의 사무국 역할을 담당하던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없어졌다. 그러면서 국과위 간사를 교육과학문화수석으로 바꾸고 운영체계도 민간전문가 중심으로 구축했다.

일본,영국,독일,그리고 과거 한국처럼 과학기술 주무부처 한곳이 연구개발예산의 절반 이상을 집행하는 나라에서는 과학기술정책 조율이 상대적으로 단순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과학기술정책이 분산 · 다원화된 현 체제에서 29개 정부부처가 486개 연구개발 사업을 분산적으로 집행하고 있어 부처간 경쟁적 투자로 중복 가능성이 있으며 평가기준,지역혁신,인력양성,국제협력,기술이전 등에 있어 혼선을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과학기술정책의 강력한 컨트롤 타워없이 연구개발 예산을 아무리 많이 늘린다 해도 정치사회적인 외풍에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과학기술 국가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다.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 현안이 시급한 교육 현안에 묻혀있기 십상인데다 국과위 부위원장인 교과부 장관,그리고 간사인 교육과학기술문화수석이 모두 인문계 출신인 상황에서 긴 호흡으로 국가 과학기술정책을 전담해 총괄하고 각료회의에서 과학기술계를 대변하며 책임질 실체가 없음을 걱정하고 있다.

글로벌시대에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기업들도 CTO(최고기술책임관) 제도와 조직을 도입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국방뿐 아니라 경제,문화,복지 등 모든 측면의 국가경쟁력이 과학기술에 의존하고 있는데 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강력한 CTO와 그를 뒷받침할 법적 · 제도적 장치가 없음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과위가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라고 하나 현재의 국과위 제도로는 역할도 많지 않을 뿐더러,비상임 위원들이 1년에 몇 차례 하는 회의만으로는 깊이있는 국가과학기술정책을 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교과부가 국과위 사무국 기능을 하고 있으나 인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상황에서 범부처 차원의 정책을 조율하거나 각 부처의 연구개발 계획과 국가기술지도와의 연계성을 담보하기에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어떠한 형태로든 국과위의 위상과 기능을 강화해 국가 CTO 조직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광화 <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