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출연연구기관을 대표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에 한국계 미국인 한홍택 미국 UCLA 석좌교수가 선임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정부출연연을 세계수준의 연구소(WCI)로 육성하기 위해 원장 자리를 해외석학들에게 개방하겠다고 밝힌 것에 따른 첫 성과다. KIST가 한때 통합됐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으로부터 지난 89년 분리, 독립된 이후 사실상 첫 외국 국적 수장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출연연 변혁(變革)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실 이번 KIST 원장 선임은 여러가지로 과학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종래와 달리 전 세계 해외석학을 원장으로 초빙하기 위한 서치커미티를 구성해 글로벌 차원에서 공모와 추천을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세계적 수준의 연구소 육성사업과 맞물린 것이어서 더욱 그랬다.

물론 이번 기관장 선임을 두고 국내 과학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 있건, 외국에 있건 뛰어난 과학자를 기관장으로 유치하기 위한 과도기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의미있는 시도라는게 우리의 생각이다. 또 일각에선 정부가 원했던 완전한 외국인 석학 유치에는 실패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이는 아직 현실적인 벽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다. 우리 쪽에서 욕심이 나더라도 한국과 아무 인연도 없는 외국 석학들이 선뜻 한국에 오겠다고 할 동기는 약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내 실정을 전혀 몰랐던 과거 KAIST의 러플린 총장 같은 실패사례가 연구소에서 반복되지 말란 법도 없다.

어쨌든 우리는 이번 실험이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의 과학행정과 의사결정구조로는 그 누구를 데려와도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과학계의 지적이 그것이다. 연구기관 운영의 선진화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정말 절실하다. 그 핵심은 정부가 연구소에 시시콜콜 간섭할 게 아니라 기관장에 자율권을 대폭 주고 그 성과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