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센서를 이용한 자동 주차 시스템,핸들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라이트,탑승자의 자세를 감지하는 에어백….'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자동차의 첨단 기술들이다. 전자제어 장치를 통합 · 조율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소프트웨어' 덕분이다. 미래의 자동차 시장은 바로 이런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한 정보기술(IT)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프트웨어는 단순히 전자 · 통신만의 '차세대 먹을거리'가 아니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주요 기간산업을 지탱하는 뿌리이자 각종 하드웨어를 움직이게 만드는 '지휘자'다. 시장조사 기관인 VDC에 따르면 연구개발(R&D) 비용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휴대폰 54.3%,자동차 52.4%,전투기 51.4%,의료기기는 40.9%에 달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서는 'IT 코리아'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소프트웨어 키우는 글로벌 기업들

최고의 혁신 기업으로 꼽히는 미국의 애플이 단 2종의 '아이폰'으로 2000만대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핀란드 노키아,캐나다 림(RIM) 등에 이어 세계 스마트폰 업계 3위에 오른 것은 바로 소프트웨어 분야의 경쟁력 때문이다.

애플은 작년 7월 아이폰용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사이트인 '앱스토어'를 선보이며 전 세계 수많은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을 자사의 프로그램 개발자로 끌어들였다. 앱스토어는 아이폰 사용자들을 끊임없이 묶어두는 효과까지 얻으며 지난 4월에는 다운로드 10억건을 돌파하는 위력도 과시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은 최근 노키아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휴대폰,노트북용 운영체제(OS) 시장까지 뛰어들었다. 독일 자동차 회사인 BMW는 2001년부터 'BMW 카 아이티(car IT)'라는 자회사를 운영하며 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게임 콘텐츠도 한국은 후진국(?)

한국의 소프트웨어 역량은 글로벌 경쟁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다. 국내 선박 건조 기술은 세계 최고지만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자동차의 각종 부품을 제어하는 전자장치 운영체제는 모두 독일 제품을 사용하며 매년 100억원가량의 로열티를 주고 있다.

게임 분야에서는 글로벌 선두 국가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실상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에 한정된 얘기다. 온라인 게임은 전체 시장에서 7.6%에 불과하다. 세계 게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디오 게임(48.7%),아케이드 게임(35.4%) 등에서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휴대폰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휴대폰 제조사들은 세계 2,3위를 달리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터치스크린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등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모바일 웹브라우저,운영체제,문서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노키아 마이크로소프트(MS) 어도비 구글 등 외국 회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생태계 바꿔야

전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은 8000억달러(약 1030조원)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3배,휴대폰의 6배 규모다. 이 가운데 한국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채 2%가 되지 않는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제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제품을 만들어내도 불법 복제나 헐값 유통의 덫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서는 경우가 많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회(BSA)에 따르면 국내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10%만 줄여도 약 2만개의 일자리 창출은 물론 3조원의 국내총생산(GDP) 상승 효과가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만 전 한빛소프트 회장은 "미국 학생들은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새로 나온 인기 게임의 복제 CD를 갖고 있는 게 자랑거리"라며 업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김수진 한글과컴퓨터 대표는 "한국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때"라고 강조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