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서너개씩 가지고 있으면서도 엄마가 자주 잃어버리는 것은?

A:리모컨.

'엄마의 기억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척도로 농담 삼아 자주 이야기하는 리모컨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약방의 감초'처럼 에어컨,DVD 플레이어,TV 등 수없이 많은 전자제품에는 꼭 리모컨이 붙어 있다. 하지만 정작 리모컨은 푸대접을 받기 일쑤다. 수십개의 버튼이 달려 있지만 결국 누르는 버튼은 몇 개 안 된다. 여러 개가 있다 보니 이리 저리 발에 차이고 서랍 속에 넣어뒀다 어디에 뒀는지 깜빡 잊기도 쉬웠다. 진화하는 리모컨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올해 나이 스물여섯

리모컨의 올해 나이는 스물여섯.국내에 처음 리모컨을 선보인 것은 LG전자였다. 1981년 말 처음으로 컬러방송이 시작되면서 컬러 텔레비전이 나왔다. 리모컨은 컬러방송 시작 이후 2년이 지나기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1983년 처음으로 국내 시장에 등장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드르륵'소리가 나도록 채널을 돌려줘야 했던 소비자들은 이제 거실에 편안히 앉아 채널을 바꾸고 소리를 줄이거나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리모컨은 TV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미국의 한 업체가 1990년대 말 박수를 쳐서 TV를 켜고 끌 수 있는 제품을 내놓긴 했지만 채널 바꿈 버튼과 음량조절 버튼, 전화기 버튼처럼 들어가 있는 숫자버튼이 리모컨의 대세를 이뤘다.

◆'엄지와 검지'의 법칙

단순하게만 보이는 리모컨에도 법칙은 있었다. 바로 엄지와 검지의 법칙이다. 리모컨에 들어가 있는 기능은 50여개.그래서 전자업체들은 인체공학적으로 리모컨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 리모컨에서 가장 많이 쓰는 버튼은 단연 채널버튼.음량은 한 번 고정하면 자주 바꾸지 않지만 채널은 TV를 보는 중간에도 수없이 바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업체들은 채널 버튼을 오른손 엄지로 쉽게 누를 수 있도록 위치를 맞춘다. 오른손 엄지 위치에 채널 버튼이 많은 이유다. 검지의 중요성은 그 다음이다. 집게손가락인 검지는 여타 버튼을 누르는 데 많이 쓰여 검지로 누르기 쉬운 모양으로 버튼들이 만들어진다. 상식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LG전자는 이 같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2004년 100여명의 고객 시험단을 구성해 6개월간의 시험을 거쳤다. 엄지와 검지의 법칙을 이용해 사용을 잘 하지 않는 버튼은 아래쪽에 두고 많이 쓰는 버튼은 상단에 둔다. TV 전원 버튼이 리모컨 맨 위에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LG전자 관계자는 "리모컨을 잡을 때 엄지와 검지를 통해 느껴지는 모서리의 감촉도 중요하다"며 "주요 모델은 10여개의 모형을 만들어 사용 편의성을 테스트해 모양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디자인 입는 리모컨

리모컨은 한동안 직사각형 모양 일색이었다. 검정색에 밋밋했던 리모컨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리모컨만을 따로 만들어 파는 업체들도 생겨났고 휴대폰으로 리모컨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기술도 나왔지만 리모컨의 외관에 신경쓴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삼성전자 역시 그랬다. 하지만 아르마니와 함께 TV를 만들면서 리모컨도 새롭게 바꿨다. TV를 명품 반열에 올릴 수 있는데 왜 리모컨은 바꾸지 못하느냐는 질문에서 리모컨의 변신이 시작됐다. 삼성전자가 2008년 4월 선보인 것은 조약돌 모양의 리모컨.기존 사각형 리모컨도 그대로 내놨지만 자주 쓰는 리모컨을 '보조 리모컨' 형태로 만들어 선보였다. 폭 5㎝,길이 8㎝,높이는 2㎝.채널 변경과 음량 조절 기능과 같은 자주 쓰는 버튼만을 넣었다. 고급 장식품 느낌을 내기 위해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은은한 조명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전원 버튼과 채널 버튼,음량 버튼만 은색 양각으로 새겨 세련미를 더했다.

◆터치 리모컨의 등장

디자인을 입기 시작한 리모컨은 좀 더 똑똑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 TV 전략제품을 선보이며 블루투스 기능을 적용한 리모컨을 내놓았다. 이어폰을 리모컨에 꼽으면 주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TV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TV를 보다가 원하는 장면이 나오면 리모컨 버튼을 눌러 화면을 출력해 볼 수 있는 기능도 넣었다.

삼성전자는 올 들어 터치스크린 리모컨을 내놨다. 터치폰을 사용하듯 손가락으로 리모컨 화면을 두드려 채널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방송 프로그램 편성표를 찾아볼 수도 있고,리모컨 화면으로 TV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PC와 리모컨을 무선으로 연결해 PC 안에 있는 동영상을 TV 화면으로 불러와 볼 수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존 투박한 버튼 대신 휴대폰에 쓰이는 터치식이 각광받고 있다"며 "최근에는 채널 음량 등 필수 기능만 조절하는 작고 세련된 디자인의 보조 리모컨이 대세를 이룬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