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와 서남표 총장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추진 중인 '모바일 하버(이동식 항구)'가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23일 지식경제부와 한국산업기술재단에 따르면 지경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지원하는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의 기술위원회 심의 결과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가 제출한 '모바일 하버 개념을 이용한 신개념 컨테이너 항만 시스템'은 조선분야 10개 후보과제 중 8위에 그쳐 정부 예산을 지원받지 못할 공산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경부는 조선분야 후보과제 중 5위까지 정부 예산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이달 말 선정결과를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항구가 배로 이동한다

'모바일 하버'는 서 총장이 취임하면서 'KAIST는 고위험,고수익 원천기술 개발에 도전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해양시스템공학과를 신설할 정도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신개념 기술이다. 기존의 선박과 항만의 관계를 뒤바꾼 역발상 항구로 바닷물에 뜨는 항구가 대형 컨테이너를 실은 선박으로 이동,컨테이너선이 항구까지 들어오지 않고도 신속하게 하역한 후 떠나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이 기술은 지난 1월 발표된 정부의 신성장동력과제에도 포함됐으며 KAIST는 2011년 말까지 창원대,STX조선과 함께 파일럿 시스템을 완성해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에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기술적 과제는 △부유체 기본설계 △양현 하역을 위한 갠트리 크레인(골리앗 크레인) 하역시스템 △모바일 하버 택시 등 해상과 육지를 연계한 수송기술 확보 등으로 KAIST는 정부에서 5년간 연 20억원가량의 지원금과 조선업계의 매칭펀드를 받아 기술 개발에 나서려고 했다.

모바일 하버가 낮은 순위에 머무른 것은 장기적인 기술개발에 대한 업계의 호응이 저조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경부 관계자는 "모바일 하버가 장기적으로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인 것은 사실이나 세계 1위 조선산업국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시급히 개발해야 할 기술들이 산적해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며 "정부 예산이 한정돼 있는 데다 매칭펀드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업계의 의견이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실제로 5위 안에 포함된 기술들도 조선업계의 중요한 난제로 중국 등 후발 조선 국가들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개발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동북아 물류 허브 경쟁 치열

하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모바일 하버' 기술에 어떤 방식으로든 정부 예산이 지원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전 세계 교역량 증대에 따른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로 해상운송시장이 초대형 컨테이너선 위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현재 우리나라가 수주한 1만TEU 이상급 컨테이너선의 잔량만 170척에 이른다.

모바일 하버는 항만 증설에 필요한 육상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만5000TEU급 거대 선박에 필요한 육상 항구의 지형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고 양현 하역 시스템이기 때문에 하역이 효율적이다. 특히 수심이 얕아 큰 항구를 건설할 수 없는 우리나라 서해에서도 모바일 하버를 이용하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모바일 하버 1기는 연간 300만TEU를 처리할 수 있으며 이는 인천항과 맞먹는 규모다. 1기당 가격이 1조~2조원에 달해 수출시 막대한 외화를 획득할 수 있다.

KAIST는 모바일 하버가 처리할 수 있는 세계 컨테이너 처리량의 잠재수요가 2018년께 1억5280만TEU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순흥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 학과장은 "싱가포르,상하이 양산항 등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거점항만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일본도 '슈퍼중추항만 육성계획'을 수립해 동북아지역의 중심항만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모바일 하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다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부산항을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북동부의 물류를 담당하는 대형 선사들에 대한 적극적 유인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경남 기자 kn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