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왕국 일본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게임기 수요급감과 그에 따른 업체들의 위상약화 때문이다. 세계 최강의 명성을 자랑해 온 일본 게임산업을 덮친 난기류는 게임기메이커의 원조인 닌텐도와 소니의 고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소니는 10월 말 발표한 중간결산(9월, 일본 대다수 기업들의 회계연도는 4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임) 실적을 통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보다 34%나 줄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추세라면 호전 가능성이 전혀 없다며 내년 3월의 연간결산 전망을 하향 수정한다고 덧붙였다. 소니가 수치를 무릅쓰고 '상황이 좋지 않다'고 털어놓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게임사업의 부진 때문이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와 관련, 소프트웨어를 축으로 한 게임사업은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91%나 격감하면서 다른 사업부문에도 주름살을 안겨준 것으로 나타났다. 보물단지로 각광받았던 플레이스테이션의 판매가 일본과 미국시장에서 나란히 뒷걸음질친데다 코스트 다운마저 뜻대로 안되자 소니는 전용 소프트웨어 출하 계획을 당초 목표보다 크게 낮춰 잡았다. 2003 회계연도에 2억1,200만개 이상을 판매하려던 방침을 수정, 이보다 850만개가 적은 2억400만개로 판매목표를 끌어내렸다. 선발 메이커인 닌텐도의 사정도 소니와 다를 바 없다. 9월 중간결산의 매출이 지난해 동기보다 200억엔 줄어든 데 이어 최종손익에서 약 30억엔의 적자를 냈다. 150억엔의 흑자를 예상했던 것과 너무도 다른 결과다. 닌텐도의 적자는 특히 지난 62년의 증시 상장 후 처음 겪는 일이라서 회사와 투자자들의 충격은 더 컸다. 전문가들은 소니와 닌텐도의 고전 원인을 게임 소프트웨어의 한계와 시장 환경 변화에서 찾고 있다. 소프트웨어업체들의 개발경쟁이 불을 뿜으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소프트웨어가 갈수록 시장에 넘쳐나자 고객들이 이를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부 마니아를 제외한 대다수 청소년 이용자들의 수준과 맞지 않는 소프트웨어로 고객들의 시장이탈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게임문화의 확산과 가정용 게임 대신 온라인게임에 매달리는 인구가 늘어난 것도 메이커들을 곤경으로 몰아넣었다고 보고 있다. 손안의 휴대전화 단말기로 언제, 어디서나 게임에 매달릴 수 있게 된데다 초고속인터넷 보급으로 온라인게임의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고객들은 굳이 가정용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로 눈을 돌리지 않게 됐다는 설명이다. 소니와 닌텐도는 게임의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게임기 본체를 값싸게 내놓는 대신 여기서 생긴 수익 차질을 고가의 소프트웨어 판매로 메우는 장사수법을 고수해 왔다. 닌텐도 등 다른 메이커들에 비해 그래도 본체 판매의 수익률이 높다는 소니마저 게임사업 수익의 약 80%를 소프트웨어 의존하고 있음이 이 같은 사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플레이스테이션2의 신규보급이 한계에 이를 경우 소프트웨어 판매부진으로 소니가 입을 손실은 더 커질 것이 틀림없다고 점치고 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승부수로 소니는 하드디스크 내장형의 디지털다용도디스크(DVD) 레코더에 게임 기능을 붙인 'PSX'를 올 연말까지 시장에 투입, 새바람을 일으킨다는 각오다. 디지털카메라를 플레이스테이션2에 접속, TV 화면에 이용자의 모습을 비쳐가며 즐기는 신형 게임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2004년부터는 휴대형 게임기 'PSP'를 전략상품으로 앞세워 닌텐도가 장악하고 있는 휴대형 게임기 시장을 적극 파고들 계획이다. 닌텐도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퍼즐 등 쉽고 간단한 소프트로 인기 만회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현재로서는 게임산업의 적신호를 걷어낼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며 "차세대 게임기가 등장할 향후 2~3년 동안 어떻게 수익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