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HP 등 미국 PC업체들의 차세대 TV 시장 진출은 이 제품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국내 가전업체들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PC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PC와 TV의 영역이 불분명해지고 있는데 따른 것. 이들은 막강한 브랜드파워를 등에 업고 거액의 마케팅 비용을 들인다는 계획이어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브랜드이미지의 국내 TV메이커들은 초긴장 상태다. 특히 이들은 자체 생산보다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통해 TV를 조달할 계획이어서 자칫 국내 메이커들이 OEM 업체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이들은 대만업체들은 물론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메이커에도 제품 공급 의사를 타진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 사라지는 PC와 TV의 경계 미국의 PC업체가 잇달아 '외도'에 나서고 있는 것은 주력인 PC시장이 3년째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는데 따른 돌파구 모색 차원이기도 하지만 PC와 TV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델의 마이클 델 최고경영자(CEO)도 9일(한국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LCD TV 시장 진출 계획을 밝히면서 그 이유를 LCD모니터와 LCD TV의 경계가 모호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소니 마쓰시타 삼성전자 LG전자 등 가전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했던 아날로그TV 시장과 달리 LCD TV 등 디지털TV는 대부분 모니터 업체들이 제품 개발을 성공할 정도로 표준화가 상당 부분 진행돼 기술진입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다. 제품 마진이 PC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다는 점도 이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미국 4위의 PC업체인 게이트웨이가 지난해 말 PDP TV와 LCD TV의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미국 평판TV시장에서 두 자릿수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도 이들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 초대형 경쟁자의 등장 델은 미국 홈 PC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PC업체다. 소비자가 주문하면 그때부터 제품을 만들기 시작, 재고를 최소화하는 독특한 사업모델을 채택함으로써 낮은 가격에 PC를 팔면서도 높은 마진율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델이 TV시장에 뛰어들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급격한 가격인하다. 델의 사업구조상 TV업체들보다 가격을 인하할 여지가 넓기 때문이다. 세계 2위의 PC업체인 HP 역시 TV시장 진출을 앞두고 전세계에 대대적인 광고전에 나서고 있다. ◆ 대응책 골몰하는 삼성과 LG 삼성과 LG는 델과 HP의 시장 신규참여에 따른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부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의 브랜드파워가 국내 업체에 비할 것이 못되는 데다 신규진출인 만큼 초기 마케팅비용으로 막대한 자금을 퍼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의 TV시장 참여가 확정된 상태에서 이들이 제의해온 OEM 납품 제의를 받아들일 것인가도 고민이다. 막강한 유통망을 자랑하는 델과 HP의 제의를 거절한다면 OEM 거래선을 대만 등지로 돌릴 수 있고 OEM 납품 없이 독자 브랜드만 유지할 경우 출혈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 업체들이 OEM 조달에 응한다면 디지털TV의 일류 고가 브랜드 육성 및 유통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디지털TV를 '애니콜'에 이은 간판 제품으로 육성한다는 전략 아래 OEM 사업을 지양하고 있다"며 "하지만 연간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델과의 협력 관계를 감안하면 제안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