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는 한국의 과학기술을 짊어지고 나갈 싱크탱크임에 틀림없다. 대덕단지에는 국내 최고수준의 과학기술 두뇌들이 몰려 있다. 이뿐만 아니다. 국내에서 대덕단지 만큼 산.학.연 협력체제를 갖춘 연구단지도 아직까지는 없다. 대덕단지를 대체할 만한 조직을 다시 만들기도 쉽지 않다. 그런 대덕연구단지가 왜 연구성과 문제를 둘러싸고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가. 도대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인가. 당초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 PBS 제도의 맹점 =90년대 초반 정부 출연 연구소에 도입된 PBS(Project Base System 목적기반사업) 제도는 연구소의 분위기를 확 바꿔놨다. 그동안 정부 출연금을 통해 연구소의 인건비 등을 지원해 주던 데서 벗어나 연구원들이 정부 및 민간의 연구과제를 통해 인건비를 확보하도록 한 것이 이 제도의 취지였다. 이 제도는 연구원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연구에 몰두해야 할 연구원들을 자신의 인건비를 벌어들이기 위해 연구계획서를 싸들고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와 기업들을 쫓아다녀야 하는 '보따리 장사꾼'으로 만들었다. 생명공학연구원의 경우 연구원들에게 지난 한햇동안 전체 인건비의 15%밖에 지원해 주지 못했다. 나머지는 연구원들이 알아서 챙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연구소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연구소들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연구소 연구원이라도 분야에 따라 갈린다. 오히려 다른 연구소의 같은 분야 연구원과 더 친밀하다. 연구원들은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채우고 있다'는 생각에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소 따로, 연구원 따로'가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 복잡한 연구비 지원시스템 =현재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개발 사업에는 특정연구개발사업과 기초과학 연구사업 등이 있다. 현재 특정연구개발사업에만 6천억원, 기초과학 연구사업에 2천억원을 투자한다. 이같은 국가 프로젝트는 3월께 신문에 공고를 낸 뒤 신청을 받고 평가해 선정한다. 물론 여기에는 연구소 대학 기업이 같은 자격으로 응모한다. 문제는 이 신청이 한 해에 한번만 이뤄지는 데 있다. 신청에서 떨어지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기술이 빨리 변하는 특정 연구과제의 경우 1년은 짧지 않은 기간이다. 자칫하면 외국과의 경쟁에서 뒤질 수 있다. 평가기간도 길어 신청한 뒤 선정될 때까지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과제에 선정되면 다시 수행계획서를 제출하고 협약을 체결한다. 협약이 완료돼야 돈이 지원된다. 이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당장 연구장비나 자료가 필요하지만 참아야 한다. 행정업무 처리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연구원들은 초조해지고 속이 탄다. ◆ 정년 문제 =국민의 정부 들어서면서 이뤄진 정부 출연 연구소 구조조정으로 연구원의 정년이 종전 65세에서 61세로 낮아졌다. 더 큰 문제는 획일성이다. 모든 연구원에게 이것이 적용되므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해도 61세가 되면 연구직을 그만둬야 된다. 연륜이 필요한 기초기술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국에서는 나이 많은 연구원들이 노벨상을 타는 경우가 수두룩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사례를 찾을 수가 없다. 반대로 능력 없는 연구원 퇴출제도도 물론 없다. 연구원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월급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같은 정년문제는 연구원들이 대덕을 떠나게 만드는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