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출신 엔지니어들. 한국을 대표하는 기술역군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60∼70년대 정유 석유화학분야의 핵심으로 뛴게 화공과 출신들이었다. 70년대 이후 자동차 철강 조선 건설분야엔 기계엔지니어들이 있었다. 전자공학도를 빼놓고 한국의 전자산업을 얘기할 수 없다. 화공학과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 서울공대는 한국경제를 성장시키는데 일등 공신역할을 했다. 한국경제의 고속성장에 단단히 한 몫을 했다. 명실상부한 이공계분야 인재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서울공대가 옛날의 서울공대가 아니다. 산업계가 이들을 향해 'No'라 하고 있다. 사회 인식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프리미엄을 주지 않고 있다. 왜 이렇게 됐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인가. 서울대 공대 출신의 김모 연구원(40). 그는 대덕 연구단지 내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원자력안전 평가업무를 맡고 있다. 간단한 계산과 단순 수학지식으로도 충분한 일이다. 그래서 대학에서 배웠던 지식을 써먹을 기회가 전혀 없다. 고등학교때 배웠던 수학이 더 필요할 때가 많다. 그는 관리쪽에 더 신경을 쏟고 있다. 인간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들어 부쩍 자신이 불만스럽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열심히 공부했다. 최고 학부를 다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과 차별화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 미래에 대한 자신도 없다. 서울공대 출신 가운데 김씨 같은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됐는가. 그 공통점의 하나가 바로 '졸업정원제 세대'라는 점이다. 졸업정원제가 서울공대 추락에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지난 1981년 대학 본고사가 폐지되고 정원의 30% 이상을 더 뽑는 졸업정원제가 도입되면서 서울대 입시에 대혼란이 벌어졌다. 서울공대를 겨냥, 3년간 준비해온 학생들이 객관식 때문에 좌절하고 말았다. 대학측은 합격선을 밝히기를 거부했다. 평균점을 공개하는 우스운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서울 공대 역사상 처음이었다. 졸업정원제의 파문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서울공대 입학정원이 81학번부터 7백95명에서 1천34명으로 30%이상 늘어나면서 정상 교육이 어려워졌다. 고교 교육의 연장판이 돼버렸다. 객관식 시험으로 성적을 매기면서 질적 저하로 이어졌다. 고교 수학 과학 기초교육을 다시 가르쳐야 했다. 커리큘럼을 바꾸는 것은 엄두도 못냈다. 산업현장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60년대부터 해오던 강의를 그대로 반복하는데 그쳤다. 실력을 닦을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그저 취업하는데 필요한 졸업장을 받는데 급급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산업계에서 '서울공대생 왜 이러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대학 4년, 군대 3년에다 직장에서 책임있는 보직을 맡는데 걸리는 10년 정도를 합쳐보면 이들이 바로 졸업정원제 세대인 셈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98년에 '열린 교육'이 도입됐다. 열린교육은 졸업정원제로 파김치가 된 서울공대를 뿌리째 흔들어버렸다.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이 시행한 이 교육 개혁에 따라 99년부터 이과 수험생들은 문과와 똑같은 수학만을 배우고 대학시험을 치렀다. 서울공대는 신입생들중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80% 가량의 학생들을 따로 모아 기초 수학이나 과학을 가르쳤다. 서울 공대의 추락에 여러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서울 공대와 공대생들이 시대흐름에 제대로 쫓아가지 못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결정적인 요인은 다른데 있다. 바로 우수한 인력의 유치와 양성을 가로 막는 제도였다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