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 비행기를 타라.' 실리콘밸리에 '한국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미 초고속인터넷과 이동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고'란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월드컵이 한국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미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한국 기업 잡기'에 나선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불황으로 미국 기업이나 제품에서는 돌파구를 찾기 어렵게 되자 대안으로 '한국 IT'에 눈을 돌리는 것도 한국이 주목받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 바람'은 최근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으로 코리아 IT 네트워크(KIN)가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한민족 IT 전문가 대회(KIN 컨퍼런스)'에서 잘 드러났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1천여명 가운데 줄잡아 2백여명은 비(非)한국인이었다는게 KIN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첫 행사에 비해 외국인이 2배 이상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외국인들의 전문 분야도 다양했다. 이번 행사의 하나로 마련된 마케팅엑스포(한국 벤처 기업과 미국 유통 전문업체간의 상담)에는 코 텐노 그레어 등 미국의 유력 마케팅 기업이 참가했다. 이들은 한국의 10여개 벤처 기업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 IT 제품을 미국에 판매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실리콘밸리의 유력 벤처캐피털인 드래퍼 피셔 주벗슨(DFJ)의 티모시 드래퍼 파트너를 비롯한 벤처캐피털리스트나 실리콘밸리뱅크, 코메리카뱅크 등의 벤처 투자 담당자들도 많이 보였다.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출신으로 몇몇 벤처기업에 투자해 큰 돈을 번 뒤 엔젤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는 수하스 파틸씨처럼 이 지역의 유력 인사들도 적지 않게 행사장을 찾았다. 그는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크래들 테크놀로지스란 벤처기업에 투자하거나 제휴할 한국 기업을 찾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한국 잡기 바람은 단순한 관심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행동들이 뒤따르고 있다. 한국 IT 제품을 미국 시장에 들여다 팔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열린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마케팅엑스포에 참가한 어메리칸 캐피털 마켓츠 그룹(ACMG), 고보시 등 16개 미국 마케팅 회사는 이 때 만났던 한국 기업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마케팅 회사들도 잇따라 등장했다. 아이파트너스 등 주로 한국 교포들이 설립한 이들 회사는 "한국 기업과 미국 유통시장을 모두 이해하고 있어 양쪽을 연결하는데 이상적"(아이파트너스 이종훈 부사장)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비디오기록장치(DVR) 및 보안장비 등 한국이 앞서 있는 하드웨어 제품을 미국에 공급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실리콘밸리 한국인들의 취업 문호도 넓어지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반적인 IT 기업에서는 물론 마케팅, 컨설팅, 법률 홍보 등 전문분야의 지원 업체들에서 한국인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펜윅 앤 웨스트에서 특허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송재원 변호사는 "최근들어 한국계 변호사를 부쩍 자주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높아지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바람'에서 구체적인 결실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민간업계와 정부의 공동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리콘밸리=정건수 특파원 ks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