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가 입찰제는 공공 및 민간 통신부문에서 오랫동안 관행으로 굳어져온 입찰 방식이다.

지난 2년동안 2조원대에 달하는 통신장비 입찰이 모두 이 방식으로 이뤄졌다.

정부기관 등 공공부문 발주도 3천만원 이상 프로젝트는 모두 최저가 입찰제를 택하고 있다.

이는 입찰 과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명분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최저가 입찰제가 더이상 존속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객관성과 투명성이라는 명분을 살리기보다는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업계의 출혈경쟁으로 생존력을 약화시키는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 장비업체 제살깎기 경쟁 유발 =한국통신의 경우 지난해 3월 60만회선 규모의 ADSL(초고속디지털가입자망) 장비 입찰에서 회선당 1백20달러대의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S사가 공급권을 가져갔다.

당시 이 가격은 업계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장비업계 한 관계자는 "이는 원가 수준보다 턱없이 낮은 것으로 ADSL 장비 가격을 폭락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공급권을 따낸 S사는 2백80억원의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시장확보 차원에서 공급권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로통신도 지난해 11월초 케이블모뎀 장비 입찰에서 6만6천원선을 써낸 J사를 공급자로 선정했다.

지난해 8월 비슷한 규모의 장비 입찰에서 낙찰된 가격(9만8천원)과 비교하면 불과 두달여만에 3분의 1 가까이 폭락한 것이다.

당시 입찰에서 탈락한 업체 관계자는 "나중에 하나로측으로부터 J사와 같은 가격대에 공급하면 물량을 나눠 받겠다는 제의를 받았으나 대당 2만∼2만5천원 가량 손해 보면서까지 공급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 중소업체 설 땅이 없다 =사업자들의 최저가 입찰 관행은 곧바로 시장에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게 업계의 우려다.

"무엇보다 자금력이 부족한 업체들은 가격 폭락을 감당하지 못해 부도 사태를 맞고 있다"(L사 관계자)는 것이다.

흥창 부도가 대표적이다.

대기업 중에서는 한화정보통신이 폭락한 가격에 원가 수준을 맞추지 못한 결과 교환기 공급권을 상실, 사실상 사업을 접을 위기에 놓여 있다.

대한전선도 전송장비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중소 업체들은 정부기관의 구매 입찰에서도 소외당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실시한 남산1호터널 교통감시체계 장비입찰(25억원 규모)에서 모 중소기업은 "벤처의 자금력을 믿지 못하겠으니 대형 SI(시스템통합) 업체와 공동으로 들어오라"는 서울시 구매담당자의 말을 듣고 울며 겨자먹기로 SI 업체와 공동 입찰에 참여했다.

주 계약자는 서울시의 요구대로 SI 업체를 내세웠다.

결국 제일 낮은 가격을 써내 사업권을 따내긴 했으나 실적은 모두 SI 업체로 돌아갔고 해당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장비를 설치하는 ''막노동꾼'' 역할만 했다.


◇ 외산 업체만 배불리기 =업계에서는 특히 최저가 입찰제가 원가 경쟁력에서 앞선 외산 장비만 유리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다 정부기관 등 공공부문 입찰에서는 특정 외산장비 모델명을 구매 규격에 적시하는 등 국산 제품의 입찰 참여를 원천 봉쇄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조달청의 경우 최근 중형 라우터 제품을 구매하면서 외산 장비업체인 시스코시스템스의 프로토콜만을 입찰가능 규격으로 명시해 국산 장비업체들의 입찰 참여를 제한한게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NTT의 경우 1백50만 회선의 장비 구매입찰에서 알카텔 루슨트테크놀로지 삼성 현대 등 외국 기업을 떨어뜨리고 NEC와 후지쓰 등 자국 업체만 선정한 사례는 국내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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