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구석의 작은 2층 건물에서는 코를 찌르는 분뇨 냄새가 물씬 난다. 폐기물 연구棟인 탓이다. 인분,음식물 쓰레기,축산폐수 냄새를 한꺼번에 맡을 수 있는 이 연구실의 주인은 "똥박사"로 잘 알려진 박완철 박사. "지난 80년대 중반 대통령의 지시로 분뇨 정화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어떤 연구자들은 분뇨의 형상에 맞춰 인공적으로 폐수를 만들어 실험을 했는데 냄새가 안난다는 장점은 있지만 실험결과를 믿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그래서 저는 한 번도 합성폐수를 이용하지 않았어요.분뇨차에서 생분뇨를 수거하기 위해선 머리카락 담배꽁초 등 협작물을 모두 손으로 제거해야 합니다.후각은 마비될 정도였고 시각이나 촉각이 감당하기에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당시 실험실에 강력한 환기설비를 달아놨는데 한 번은 정전이 되면서 온 연구소에 냄새가 퍼져 "쓸데없는 실험을 한다"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분뇨 정화조와 축산폐수 정화조를 개발,보급했다. 생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이 2백ppm에 달하는 분뇨 등을 미생물 정화방법으로 10ppm 정도로 낮출 만큼 효율을 높였다. 그는 스스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순탄한 삶은 아니었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데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장남인 탓에 부모님은 시골 학교를 나와 공무원을 하면서 농사 짓기를 바랐어요.그래서 상주농장고등학교라는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이 합쳐있던 5년제 학교를 다녔습니다.그런데 말만 초급대학이지 사실상 농업 기능공 양성소였죠.하루 수업 6시간 가운데 4시간은 일하는 것이었어요.집에서도 일하기 싫어했는데 학교에서까지 일을 해야 했으니…" 박 박사는 이 학교를 졸업한 후 약 1년여 동안 농사를 짓다가 편입학 검정고시를 통해 건국대 농학과에 입학했다. 서울 구경은 이 때가 난생 처음이었다고 한다. "대학졸업 후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소에 들어왔는데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연구원 대부분이 막강한 경력을 갖춘 사람들이었으니까요.그만큼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젊었을 때 고생했던 게 끈기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분뇨와 미생물과 함께 15년여를 살아온 그는 이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다. "미생물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됐습니다.미생물도 생명체라 솔직히 교감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축산폐수 정화조를 개발할 때 남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는데 냄새를 맡아보고 색깔을 보면서 미생물이 잘 자라면 '내 말을 참 잘 듣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다른 연구원들에게도 미생물에 충분히 애정을 가지라고 권합니다.꿈에 인분을 보면 운이 따른다고 합니다.저는 매일 좋은 꿈을 꾸면서 사는 셈이지요" 그는 대규모 정화시설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하수처리장 아파트단지 등 대규모 시설에 활용 가능한 고효율 설비를 만드는 게 목표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창업한 벤처기업 바이오메카의 최고기술책임자(CTO)도 맡고 있다. 미생물을 이용한 방향제 등의 개발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올해 초 안철수 이민화씨 등 저명인사들이 받았던 '젊은 공학인상'수상이란 영광도 안았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