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홈페이지를 갖고 있지 않는 회사가 없다. 홈페이지가 회사의 홍보 수단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적인 업무가 행해지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10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지금처럼 홈페이지가 한 회사의 얼굴로 자리잡기까지는 웹의 중요성을 알리고 그 기업의 특성에 맞는 웹을 만들어 주는 인터넷 전도사들이 있었다. 웹에이전시 디자인 스톰의 손정숙(36) 대표. 그는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인터넷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할 무렵인 90년대 중반 이 분야에 뛰어들어 최고의 웹에이전시를 일궈낸 인물이다. 66년 대구생. 2남1녀중 둘째. 남자 형제들 틈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인형 대신 딱지나 로봇을 쥐고 놀았다. 사춘기 시절. 씩씩했던 골목대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학교에선 전혀 튀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숫기 없는 이 여학생의 머릿속은 항상 넓은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은 20년 가까이 살아온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대구에서 꽤나 많이 떨어진 청주에 있는 교원대 수학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솔직히 전공에 대한 애정은 없었다. 별다른 기대도 안했던 대학 생활이었지만 당시 캠퍼스를 달구고 있던 '참교육' 논쟁은 안일했던 그의 삶에 충격으로 다가왔고 결국 인생의 방향키를 돌리게 만들었다. "졸업을 앞두고 한동안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습니다. 현장에서의 경험 없이 교단에 서서는 가르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평범한 교사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실력을 갖춰 현장에 나서야 겠다고 맘먹은 그는 1989년 카이스트 응용수학과에 진학했다. 유일한 사범대 출신. 수재들이 모인 곳인 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밤샘 연구가 며칠동안 지속될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 선택한 길인데 거기서 멈춰 버릴 순 없었다. 결국 2년간의 험난한 석사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1991년 손 대표는 삼성종합기술원에 취직했다. 교사라는 보장된 길을 어렵사리 버리고 선택한 직장인 만큼 애정이 남달랐다. 제일 먼저 출근해 사무실의 불을 켤 때도 많았다. 그러나 곧 기대와는 너무 다른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가 맡은 업무는 소프트 개발업무.하지만 서류업무를 할 때가 더 많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남녀 차별은 더욱 사기를 꺾었다. "직장 생활 초반에 의지를 상실했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고 차라리 교사를 할 걸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결국 인사고과에서 낙제점을 받았고 2년이면 달게 될 대리 감투도 뒤로 미뤄야 했다. "눈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실패라곤 몰랐던 제가 처음으로 돌부리에 걸린 거였죠. 안그래도 '여성'이라는 불리한 꼬리표를 달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간 모든게 수포로 돌아가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때마침 1993년 소관업무가 삼성SDS로 넘어가면서 그곳으로 적을 옮겨 새 생활을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날밤을 새며 소프트 개발에 몰두하는게 일상이 돼버렸다. 사내에선 일벌레로 통했다. 그 결과 1995년 SDS 대표로 삼성 그룹내 디자인연구원인 IDS에서 연수를 받게 됐다. 각 계열사로부터 추천된 핵심 인력들이 모여서 당시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멀티미디어에 대해 교육을 받는 자리였다. "얼핏 보기에 차갑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기계인 컴퓨터가 가져올 놀라운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인터넷이 손 대표의 정복 대상에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구하기 힘들었던 인터넷 관련 서적을 사서 항상 끼고 다니면서 사이버 세상의 무한한 가능성에 희열을 느꼈다. 1997년 인터넷에 푹 빠져있던 손 대표에게 새로운 전환기가 왔다. 사내 벤처 공모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기업의 웹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웹에이전시 아이템을 내 선정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디자인 스톰은 탄생했고 삼성 특유의 체계적인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친 뒤 1999년 독립했다. "회사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개인적인 일들은 당분간 접어두기로 맘먹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직 결혼도 안했죠" 초반엔 삼성그룹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자동차 등 디자인 스톰의 태생과 관련된 삼성계열사들의 수주를 받았다. 하지만 회사의 장래를 위해선 언제까지나 삼성의 그림자 아래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최고의 기술로 무장한 뒤 부지런히 발로 뛰는 수밖에. 손 대표는 회사라는 수레가 잘 굴러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능력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뭣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직원에게 남자 친구의 근황까지 물어주는 세심한 배려를 쏟으면서 완벽한 '팀 플레이'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 '전략 플레이'도 중요했다. 프리젠테이션에 나가기 전엔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데 한달 이상?시간을 투자했다. 프리젠테이션을 며칠 앞두고는 긴장 탓에 소화불량에 걸린 적도 많았다. 이같은 노력이 근간이 돼 디자인 스톰의 이름은 아름아름 알려져 나갔고 클라이언트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최근에는 정보통신부와 인천국제공항의 대형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정보통신부의 경우 정보통신업계 주무부서인 만큼 상징성이 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경쟁 또한 치열했다. 손 대표는 털털한 성격 덕인지 비즈니스를 하는데 여성으로서 느낀 장벽은 별로 없다고 한다. 오히려 사업 경력이 짧은 탓에 실수를 종종한다고 한다. 하지만 손 대표는 요령을 부리지는 않겠단다. 정공법으로 모든 것을 하나씩 극복해 나갈 생각이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 --------------------------------------------------------------- < Success 5 > 1.완벽한 팀플레이를 지향한다 2.전략 플레이로 승부한다 3.때를 놓치지 않는다 4.사람이 밑천이다 5.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