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빌 게이츠가 ''정보화 사회의 전도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전세계를 윈도(Window) 안에 가두려는 악덕 기업가''로 더욱 악명 높다.

단순히 돈을 버는 데 그치지 않고 운영체제(OS) 시장을 선점,다른 MS 프로그램을 윈도와 통합함으로써 사용을 강요하고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반감을 토대로 나온 영화가 바로 ''패스워드''다.

원제는 반독점을 의미하는 ''Antitrust''다.

게리 윈스턴(팀 로빈스 분)이라는 컴퓨터업계 거물은 전세계의 모든 통신기기와 인공위성을 하나로 연결하는 거대한 프로젝트 ''시냅스''만이 이 세상을 테크노피아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설파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컴퓨터 천재 마일로(라이언 필립 분)는 친구인 테드와 함께 자신의 집 주차장에 작은 컴퓨터 회사를 차려 디지털 컨버전스(모든 전자통신 기기들이 하나의 공급원으로 통합되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어느 날 게리가 마일로에게 거액의 연봉을 제의하자 마일로는 테드를 남겨둔 채 게리의 회사로 옮긴다.

그러나 친구 테드가 살해당하고 마일로는 그것이 게리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극중 게리는 빌 게이츠를 노골적으로 상징한다.

옷차림이나 외모,심지어 최첨단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대저택의 실내장식까지 게리는 빌 게이츠를 빼다 박았다.

이 영화는 정보의 공유를 주장하는 ''카피레프트(copyleft) 정신''을 담고 있다.

MIT대 연구원이었던 리처드 스톨먼은 누구나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GNU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해 필요에 따라 고쳐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리누스 토발즈가 개발한 ''리눅스'' 시스템은 GNU 정신에 잘 부합하는 대표적 운영체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스를 공개하고 언론의 카메라 세례를 받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리처드 스톨먼이나 리누스 토발즈가 연상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지식재산권을 부정하거나 침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건전한 경쟁을 막고 사용자에게 불편을 주는 소프트웨어 독점도 용서받기 어렵다.

빌 게이츠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몹시 궁금하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