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는데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느낌이었어요. 일하면서 느꼈던 동병상련 같은게 작용했나 봐요"

모바일 게임업체 컴투스의 박지영 사장은 지난 3월 이전까진 소프트맥스 정영희 사장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막연히 친근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주위의 눈총을 견뎌내며 사업을 이끌어온 여성 CEO 특유의 동료의식 덕분이랄까.

두 사람은 지난 3월 나란히 정보통신부 산하의 중소기업협회 여성특위 부위장과 운영위원으로 만났다.

부위원장을 맡게 된 정영희 사장이 박 사장을 운영위원으로 추천한 것.

여성 CEO(최고경영자)들이 게임업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PC게임, 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 등 다양한 장르에서 터전을 잡고 맹활약중이다.

이들 여성 CEO들에겐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분야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숱한 좌절끝에 성공을 맛보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프트맥스 정영희(36) 사장은 지난 93년 게임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던중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게임사업에 발을 내딛었다.

당시 회사가 직원 월급을 못주는 형편에 이르자 개인재산을 털어 월급을 대신 준게 아예 회사를 인수하게된 계기가 됐다.

정 사장은 "얼떨결에 시작하게 됐다"며 웃으며 말한다.

소프트맥스는 95년 첫 PC게임 "창세기전" 시리즈를 내놓은 이후 지난해 12월 창세기전 완결편까지 70만카피를 판매, 국산 패키지게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온라인게임업체 제이씨엔터테인먼트의 김양신(47) 사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취업 문턱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77년 연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김 사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컴퓨터에서 1년간 프로그래머로 일하다 돌아왔다.

이후 한국전자계산, 쉘코리아에서 근무하다 가정주부로 돌아갔던 김 사장은 94년 콘텐츠 회사 청미디어를 설립, 다시 사업전선에 뛰어들었다.

98년 온라인게임 "워바이블"을 개발했으며 99년엔 만화가 황미나 원작의 "레드문"으로 온라인게임업체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IBM 마케팅이사로 일하던 남편 백일승씨도 지난 3월 합류, 부사장으로 그를 돕고 있다.

장인경(48) 사장은 지난 94년 마리텔레콤을 설립한 후 텍스트머드게임 "단군의 딸"로 승승장구했다.

여성으로 국내 첫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그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삼상전자, 생산기술연구원 등의 연구원 생활을 거쳐 게임분야에 뛰어들었다.

장 사장은 98년 미국으로 건너가 웹게임 "아크메이지" 개발에 착수했으나 외환위기에 따른 불황으로 자금줄이 끊기고 말았다.

포이동 회사건물까지 팔아가며 동분서주했다.

개발팀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 아크메이지 개발에 성공했다.

장 사장은 그때를 "생지옥이었다"고 회상했다.

마리텔레콤은 연말에 "단군의 땅"을 3D(3차원) 온라인게임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컴투스의 박지영(28) 사장은 게임업계 여성 CEO 가운데 가장 어리다.

하지만 사업경력은 누구못지 않다.

대학교 4학년이던 지난 96년 두명의 친구들과 컴투스를 설립한 후 하드웨어정보서비스업에 뛰어들었다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할 정도"로 갖은 고생을 했다.

99년 모바일게임 개발에 뛰어들어 현재 국내 선두주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이동통신회사에 60여종의 게임을 서비스중이다.

함께 창업했던 친구중 한명은 남편으로, 한명은 해외마케팅 담당으로 여전히 함께 있다.

여성 CEO들이 이끄는 회사의 분위기는 자유롭다는게 특징.

이들은 "직원들을 보듬어 안듯 편안한 개발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게 여성 CEO들이 게임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 요인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