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분야 e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고 있는 A업체.

지난해 3월 문을 열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거래를 한 건도 성사시키지 못해 매출이 거의 없다.

이 업체는 이제 e마켓플레이스 운영보다는 솔루션 판매로 수익모델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오프라인 업체들이 설립한 B업체도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다.

지난 1년간 매출이 지출액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거둔 매출도 주주사에 부탁해 구매액중 일정 부분을 할당받아 이뤄진 것.

불과 1년전 ''인터넷의 꽃''으로 각광받았던 국내 전자상거래업체의 현주소다.

전자상거래연구조합 송태의 이사는 "모든 것이 거꾸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자상거래는 업무 프로세스의 혁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그리고 기업간 협력문화가 선행돼야 한다.

전사적자원관리(ERP) 공급망관리(SCM) 등을 구축한 후 e마켓플레이스로 가는게 순서라는 것.

따라서 e마켓플레이스부터 출발한 국내 전자상거래는 머리는 있되 손발과 몸통이 없는 형국이다.

이런 지적은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2C)에도 적용된다.

국내 2천여개 쇼핑몰중 절반 이상(52.4%)이 외부 택배회사를 이용하고 있고 카드 수수료율은 일반 할인점의 두 배인 4∼5%에 달하고 있다.

가격도 품질도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과 달리 국내 전자상거래의 잠재력은 높게 평가된다.

미국의 IT(정보기술) 시장조사기관인 포레스트 리서치는 한국은 2000년 전자상거래 시장규모 세계 9위(56억달러)에서 2004년에는 7위(2천57억달러)로 도약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전망은 국내 e비즈니스 환경이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충분한 토대를 갖추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전국 1백44개 지역거점에 광케이블이 깔려 있고 인터넷사용자 수는 1천9백만명을 돌파했다.

전자거래기본법 전자서명법 등 관련 법안은 미국과 일본에 앞서 지난 99년 제정됐다.

전자상거래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의지는 어느 국가 못지 않다.

현재 정부는 기업의 거래관행을 혁신할 수 있는 법제도 정비와 중소기업의 정보인프라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는 업체에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ASP(응용소프트웨어 제공)를 이용, 1만개 중소기업의 정보화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한국을 ''아시아의 e비즈니스 허브''로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더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서울대 김영호 교수는 "기업의 불투명한 거래 관행도 개혁 차원에서 법적 기준을 만들어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가트너그룹 이종남 리서치담당 이사는 "중소기업의 정보화에 관한 한 정부는 강력한 지원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ERP나 그룹웨어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이를 구매하는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해 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