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목판 중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훌륭한 최고(最古)의 목판이 고려 팔만대장경이다.

고려 1236년(고종 23년)부터 1251년까지 16년간에 걸쳐 제작된 경판수 8만1천여장,글자수 5천2백33만여자,양면 식각 목판인 팔만대장경은 국보32호일 뿐 아니라 지난 95년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하다.

팔만대장경의 글자수 5천2백33만여자는 2백자 원고지로 환산하면 25만장이 넘고 4백70여년간 쓰여진 조선왕조실록의 글자수와도 맞먹는다.

또 구약과 신약을 모두 합친 1백31만여자와 비교해 봐도 그 글자 수는 엄청난 것이다.

전시(戰時)임에도 불구하고 구양순체의 아름다운 글꼴은 말할 나위 없고 마치 한 사람이 쓴듯 일정하며 한 글자도 잘못 쓰거나 빠뜨린 글자 없이 완벽함을 보이고 있다.

요즈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도 없거니와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경판은 먼저 붓으로 경문을 쓰고 나서 그 글자를 다시 하나하나 판각하는 순서를 거쳐 제작됐다.

글자를 한 자씩 쓸 때마다 절을 했다 하니,끝간 데 없는 정성이 보이는 듯 하다.

경판에 붙어 있는 쇠붙이 대부분은 순도 99.6% 구리다.

전기분해기술이 없던 당시로선 거의 신비에 가까운 야금기술이다.

오늘날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구리는 자연 광석을 제련이나 여과 과정을 거친 뒤 전기분해로 정제시켜 생산한다.

또한 그토록 방대한 양의 목판을 7백50여년 동안 보존 관리할 수 있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건축기술도 있었다.

앞뒤벽에 서로 다른 크기의 붙박이살창(환기창)을 만들어 바람이 들어와 한바퀴 돌아 나가게 했으며 벽을 상하로 나눠 환기창을 위아래로 배치했는데 그 크기가 각각 다르다.

이는 내부로 들어온 공기가 아래위로 돌아 나가도록 하고 동시에 공기 유출입량을 조절해 알맞은 온·습도를 유지토록 한 것이다.

그리고 건물 내부 바닥엔 숯 횟가루 소금 등을 뿌려 습도를 조절하고 해충도 막았다.

창의 크기와 위치를 조절한 완벽한 통풍구조는 당시 건축기술의 탁월함을 보여 준다.

우리는 5천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중국 문명의 강한 영향을 받긴 했으나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과학기술의 전통을 쌓았다.

우리 민족에게는 선조의 창조적인 전통이 있기에 세계 초일류국이 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손욱 삼성종합기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