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도 없이 벤처를 하는 것처럼 무모한 짓은 없습니다. 하지만 독자적인 기술을 보유했다고 안심할 일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금방 따라오니까요. 중요한 것은 실험정신을 갖고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장비 개발업체 오름텍(www.orumtek.com)의 김대위(40)사장은 이같이 말했다.

김 사장이 실험정신과 끈기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6월 그가 처음 사장 직함을 달고 문을 연 회사는 주로 시청각 장비를 수입해 판매하는 에스엠텍.이렇다할 자체 기술이 없던 게 아쉬웠던 김 사장은 디지털 셋톱박스를 개발키로 마음먹고 지난해 8월부터 연구에 들어갔다.

아날로그 셋톱박스가 대부분이었던 당시,디지털 셋톱박스를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선구자적인 판단이었다.

그러나 개발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올초에는 자금난이 심각해 포기하려고도 했다.

다행히 인터넷 공모를 통해 개발 비용을 충당한 김사장은 천신만고끝에 디지털 셋톱박스를 개발했다.

하지만 돈이 모자라 주저하는 동안 다른 업체들은 이미동일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우리를 믿고 투자한 주주들에게 원망도 많이 들었죠.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 사장은 디지털셋톱박스 사업을 정리하고 회사 이름을 오름텍으로 바꿨다.

그는 좌절할 겨를도없이 주주들을 설득시키는 동시에 앞으로 시장에서 원하는 기술이 무엇일지 곰곰히 생각했다.

그는 사이버 아파트 시장이 각광받고 있는 점에 착안,이에 맞는 제품을 개발키로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터넷을 통한 원격감시와 전자제품 제어시스템인 "웹피아2000"이었다.

"웹피아 2000"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집밖에서 집안에 있는 전자제품과 가스기기 등을 모두 제어할 수 있는 일종의 홈서버다.

4대의 카메라가 연결돼 있어 웹상에서 집안을 모니터링 할 수도 있다.

김 사장은 "요즘 건설회사들이 짓고 있는 사이버 아파트는 단순히 초고속통신망만 깔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진정한 의미의 사이버 아파트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각종 전자 제품을 제어하고 원격 감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웹피아2000"은 멀티미디어 기술을 보유한 오름텍과 부산 동명정보대학의 전자제어 기술 전문 교수들이 산학 협력을 통해 개발한 제품이다.

국내외의 많은 업체들이 개발을 서두르고 있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된 제품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각 건설회사들은 오름텍의 기술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해외에서도 "웹피아 2000"의 기술력을 인정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붐이 일고 있는 중국의 경우 한 통신회사에서 오름텍과의 적극적인 업무제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남보다 한발 앞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지만 김 사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긴장이 풀어지거나 기술개발이 늦어지면 디지털 셋톱박스의 경우처럼 시장에서 도태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웹피아 2000"을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미국 등 해외에 판매해 매출을 올린후 새로운 아이템으로시장을 주도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김 사장은 이미 2~3개 정도의 아이템을 준비해 놓고 있다.

김 사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정신으로 디지털 멀티미디어 분야의 정상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