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토함산 중턱에 위치한 석굴암은 우리나라 불교예술의 백미로 꼽힌다.

석굴암은 경덕왕(재위:742∼765년)이 세상을 떠난 역대 김씨왕 선조들의 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석불사를 김대성에게 창건토록 한 것이 기원이다.

석불사는 후에 석굴암으로 개칭됐으며 751년에 창건됐다.

석굴암은 당시 신라 오악(五岳)중 하나인 동악(東岳:토암산)에서 동해구(東海口)를 바라보는 동남 방향에 위치해 있다.

동해구 앞바다에는 신라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의 해중릉 대왕암이 있으며 경덕왕의 친형인 효성왕(737∼741년)도 화장돼 이곳에 뼈가 뿌려졌다.

석굴암 본존불의 시선은 바로 이 동해구를 향하고 있다.

69년 남천우 박사는 석굴암이 바라보는 방향은 대왕암이 있는 동해구 근처의 동짓날 해뜨는 방향인 동남 30도임을 증명한 바 있다.

1932년 일본의 요네다 미요지는 최초로 석굴암을 정밀측량했다.

그 결과 석굴암의 조형은 12자를 기본으로 하면서 정사각형과 그 대각선 길이의 응용,정삼각형 높이의 응용,원에 내접하는 육각형과 팔각형 등의 비례구성으로 이뤄졌음을 밝혀냈다.

이는 신라인들이 원주율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요네다가 당시 작성한 본존불의 측량도면을 보면 석굴암은 12당척(1당척은 29.7㎝)을 기본으로 정사각형과 그 대각선의 연속으로 설계됐다.

석굴암 주실에 있는 반구형은 12자를 반지름으로 했다.

본존불의 좌대 밑에서부터 본존불 머리끝까지의 길이가 12 자의 배수로 되어있고 본존불 위 반구형의 반지름도 12자이다.

석굴 평면 역시 반지름이 12자인 원이다.

이같은 현상은 석굴암 곳곳에 무수히 적용된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이 1대1.618의 비례로 설계되어 있는 반면 석굴암 설계는 1대1.414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인간이 최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조화의 비례로 많은 자연현상과 예술에서 찾아볼수 있다.

영남대 김익수 교수가 1980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김 교수가 측정한 본존불 뒤에 있는 공배도 우리가 알고 있듯이 정확한 원이 아니라 좌우 2백24.3㎝,그리고 상하 2백28.2㎝로 타원이다.

이는 참배자가 서서 공배를 보았을 때 원으로 보이도록 설계한 것이다.

신라인들의 과학기술에 거듭 놀랄 수밖에 없다.

염영일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