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에 사는 농부 K씨는 저녁상을 물리고 텔레비전을 켠다.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축구경기가 생중계되고 있다.

K씨는 TV화면을 보면서 무선 자판을 두드려 옆집 L씨에게 E메일을 보낸다.

"내기 하세. 진 사람이 내일 막걸리 사기로.."

"난 한국이 이긴다는 쪽에 걸겠네"

잠시후 자신은 반대쪽에 걸겠다는 L씨의 답장이 온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아르헨티나의 한 선수가 한국 문전까지 공을 몰고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K씨는 이 선수에게 화살표를 갖다 대고 리모컨을 누른다.

TV화면에는 이 선수가 프로리그에서 두차례나 MVP로 뽑힌 국보급 선수라는 정보가 나온다.

이 선수는 전반전 종료직전 기어이 한골을 넣는다.

이때 TV화면에 메일 접수 신호가 들어온다.

"안주는 푸짐해야 돼"

L씨의 메일이다.

K씨는 리모컨의 "날씨" 버튼을 누른다.

내일 구례지방은 구름이 많이 끼고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온다.

비가 내리는 날 L씨에게 막걸리 사줄 생각을 하니 억울하다.

K씨는 후반전에 전세가 뒤집힐 것이라고 기대하며 리모컨을 눌러 후반전 출전선수들의 면모를 훑어본다.

이상은 10년쯤 뒤에나 있을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2년 뒤 데이터방송이 시작되면 어느 가정에서나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평범한 일에 불과하다.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이면 데이터방송이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데이터방송이 시작되면 TV문화가 획기적으로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시청자들은 방송국에서 내보낸 프로그램을 보기만 했다.

이런 까닭에 한때 TV를 바보상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데이터방송시대가 열리면 시청자가 방송국에 데이터를 요청해 볼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

게다가 TV수상기를 인터넷 공간을 누비거나 인터넷쇼핑을 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시골 사는 노인이라도 어렵지 않게 컴맹이나 넷맹을 탈피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 시기가 바짝 다가왔다.

정보통신부는 최근 늦어도 월드컵 직전인 2002년4월이나 5월께 데이터방송 본방송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또 지상파는 이때가 돼야 가능하지만 위성방송으로는 내년 하반기면 데이터방송을 시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통부는 이에 대비,올해안에 국내표준을 제정하고 시험방송용 테스트베드를 만들어 기업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방침은 모두에게 희소식임에 틀림없다.

특히 정보화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중.장년층에겐 더할나위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사실 정보화사회의 소외문제는 정부로서도 해결하기 힘든 난제중 하나였다.

그런데 데이터방송이 시작되면 텔레비전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

다만 한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다.

데이터방송시대 디지털방송시대가 열리면 1천만 가정에 보급돼 있는 기존 텔레비전 수상기는 멀쩡해도 모두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가전업계 입장에서 보면 데이터방송 개막은 엄청난 물량의 대체수요를 유발하기 때문에 분명 호재다.

하지만 멀쩡한 텔레비전 수상기를 한꺼번에 폐기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낭비다.

그 많은 물량을 폐기처분하는 일도 결코 간단치 않다.

그렇다고 정보화를 미룰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정부 당국자들이 풀어야 할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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