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동 달래기에 나섰다. 미국 내 외교·안보 수장들이 잇따라 사우디아라비아 최고 실권자를 만난 데 이어 아랍 국가들을 상대로 “협력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 철수 이후 중동 내 영향력이 커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한편 급변하는 중동 정세 속에서 미국의 입지를 회복하려는 행보로 분석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7일(현지시간)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미·걸프협력회의(GCC) 장관급 회의에 참석해 “미국은 중동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개회사를 통해 “미국은 이 지역(중동)에 계속 머물 것”이라며 “우리는 여러분과 협력 관계를 맺는 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GCC는 더 안정적이고 안전하며 더욱 번영하는 중동에 대한 미국 비전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의 이런 발언은 중동에서 힘을 키우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과 유럽으로 외교 중심축을 이동한 틈을 타 중동 지역에 공을 들여왔다. 특히 아랍의 맹주 국가인 사우디와의 협력을 강화했다. 올 3월엔 앙숙 관계인 사우디와 이란이 외교 관계를 7년 만에 정상화하는 데 중국이 중재 역할을 했다.

반면 미국과 사우디 관계는 2018년 10월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이후 틀어졌다. 바이든 행정부가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사우디를 지목하면서다.

이런 상황을 의식해 미국은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에 힘쓰고 있다. 지난달 7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이어 블링컨 장관이 전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과도 양자 회담을 했다.

미국이 중동 외교를 강화하자 러시아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날 곧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와 전화 통화하며 양국의 협력 문제를 논의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