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의 카호우카 댐이 붕괴되면서 사건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드니프로강 주변 주민들의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해당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을 저지하기 위해 댐을 폭파시켰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러시아 측에선 우크라이나군이 드니프로강 전선 돌파를 위해 러시아 방어선을 휩쓸려는 목적으로 댐에 포격을 가해 붕괴시켰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서로 상대방 범인으로 지목

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서방의 엔지니어링, 군사 전문가들은 댐의 붕괴는 댐 안쪽의 폭발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나 구조적 붕괴의 가능성도 있지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다. 1956년 지어진 이 댐은 원자폭탄에도 견딜 수 있는 강력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국영 수력 발전 회사인 우크르하이드로에네르고의 이호르 시로타 대표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수력발전소는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발전소가 부서졌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는 즉각 러시아를 비판하고 나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이 강을 건너 진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댐을 폭파시켰다는 주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며 “러시아군이 댐에 지뢰(폭약)을 설치해 댐을 폭파시켰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측에선 러시아군이 잔인하게 전쟁을 수행하면서 표적이 됐던 마을과 농장을 파괴해 전쟁범죄 증거를 없애려고 한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우크라이나 의회 로만 코스텐코 국방정보위원회 위원장은 "러시아가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국방부 장관은 우크라이나 측이 러시아가 지키는 강 동쪽편의 군사장비를 쓸어버리기 위해 댐을 파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대통령실)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의 의도적인 사보타주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인 크림반도의 물 공급에 타격을 주기 위해 댐을 공격하려 했다고 주장해왔다.

반복된 충격과 구조적 문제로 붕괴 가능성

한편 댐이 구조적으로 붕괴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 측 모두 댐을 파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는게 더 많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인프라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위험에 몰아넣을 이유가 없고,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강 동측은 자신들의 점령지인데다 많은 군사 장비가 전개돼 있다.

반복적인 데미지가 누적되면서 댐이 붕괴됐을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댐은 흑해 핵심 항만인 헤르손과 러시아군 점령지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어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전투가 잦았다. 작년 11월에도 우크라이나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로켓이 댐의 갑문을 손상시키기도 했다. 올봄 많은 비와 함께 녹은 눈이 흘러내리면서 댐의 수위는 30년만에 최고 수준이었고 지난달 초엔 물이 흘러 넘칠 정도였다는게 위성 사진으로 확인됐다. 다만 댐의 붕괴 양상이 구조적인 붕괴와는 다르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그레고리 배처 메릴랜드대 교수는 "물의 범람으로 인한 붕괴는 일반적으로 댐의 양쪽 끝에서부터 진행되는 반면 카호우카 댐은 중앙부에서부터 붕괴됐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