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당국이 대형은행들의 자본을 약 20% 늘리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지난 3월 발생한 은행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은행의 자본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美 금융당국 "은행 자본금 20% 더 쌓아라"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 중앙은행(Fed) 등 금융당국이 이르면 이달 대형은행들의 자본을 평균 20%가량 올리도록 하는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각 은행이 확충해야 하는 자본금의 정확한 규모는 사업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 대규모 거래 사업을 진행하는 대형은행의 자본 요건이 가장 큰 폭으로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외신들은 금융당국이 도입할 규제의 주 내용은 2017년 확정된 은행 규제안 바젤Ⅲ 개정안 중 코로나19로 도입이 미뤄진 조항이라고 전했다. 해당 개정안은 은행들이 위험가중자산을 어떻게 계산할지를 다루고 있다. 위험가중자산은 주택담보대출, 기업 대출 등 각 자산의 위험 정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해 산출한다. 금융당국이 정한 표준모형으로 산출하거나 은행이 내부 모형에 맞춰 독자적으로 산출할 수 있다. 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이 금융당국이 산출한 값의 최소 75%는 돼야 한다.

규제가 도입되면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사 등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은행들도 유지해야 하는 자본금이 대폭 강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WSJ는 “새 규제는 수수료 기반 사업도 운영상의 위험으로 취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규제 대상도 자산 규모 1000억달러 이상 은행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 규제 대상인 은행 자산 기준을 기존 500억달러 이상에서 2500억달러 이상으로 완화했으나, 3월 은행 위기 이후 이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3월 말 백악관은 자산 1000억~2500억달러 은행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라고 금융당국에 지시했다.

은행업계에서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들이 자본 요건 강화를 감당하기 위해 금융소비자에게 대출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해당 비용을 전가할 수 있어서다. 은행들이 자기자본비율 부담에 일부 신용 서비스를 중단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미 대형은행을 대표하는 파이낸셜 서비스 포럼의 케빈 프로머 최고책임자는 “은행에 대한 더 높은 자본 요구는 기업과 대출자에게 부담을 주고 잘못된 시기에 경제를 방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대형은행은 자본금이 이미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블룸버그는 “최근의 은행 위기는 중소은행에서 벌어진 것”이라며 “미국의 6대 대형은행은 최근 10년간 자본금에 2000억달러(약 261조원) 이상을 추가했다”고 전했다.

이날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형은행들은 뉴욕증시에서 하락했다. JP모간은 0.98%, 웰스파고는 1.92% 떨어졌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을 인수한 퍼스트시티즌스(-3.19%)와 파산 우려가 일었던 팩웨스트(-3.52%) 등도 하락 마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