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용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때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인텔이 위기를 맞았다. 2021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재진출을 선언했지만,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해 고객사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회사) 시장을 이끄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 역량도 아직 갖추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0일(현지시간) ‘강력했던 인텔이 진흙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인텔의 위기를 조명했다. 테슬라와 퀄컴 등 고객사들도 처음에 인텔 파운드리에 반도체 제조를 맡겼다가 최근 돌아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사 요구사항 못 맞춰

반도체株 웃는데…파운드리 놓친 인텔 '눈물'
WSJ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은 인텔에 제품 생산을 맡기는 것을 재검토하고 있다. 인텔이 퀄컴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결론지어서다. 퀄컴은 스마트폰의 두뇌 반도체인 AP ‘스냅드래곤’으로 유명하다. AP는 시스템 반도체로 모바일 기기의 연산과 멀티미디어 구동 기능을 담당한다. 퀄컴은 인텔이 반도체 제조에 진전이 있을 때까지 관련 작업을 잠시 중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도 인텔과의 협력 관계를 재검토하고 있다. 테슬라는 한때 전기차의 자율주행을 돕는 데이터와 이미지를 처리하는 반도체를 인텔 파운드리에 맡기는 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인텔이 TSMC, 삼성전자와 같이 다양한 반도체 제조 능력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일부 고객사는 인텔이 기술적인 실수를 한 뒤 다른 파운드리 업체에 연락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고객사가 이처럼 인텔 파운드리를 외면하면서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꺾고 파운드리 시장 2위에 올라선다는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성공이 발목

인텔은 1980~1990년대 PC용 반도체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당시 가정용 PC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중앙처리장치(CPU)를 인텔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성공은 2000년대 들어 ‘승자의 저주’로 바뀌기 시작했다. PC용 반도체 시장에 안주한 나머지 급격히 성장하는 휴대폰용 반도체와 컴퓨터그래픽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운드리 시장 1, 2위로 성장한 TSMC와 삼성전자에 파운드리 시장을 빼앗기며 관련 사업도 접어야만 했다. 현재 TSMC 시가총액은 14조5000억대만달러(약 625조원)로 인텔 시가총액 1250억달러(약 164조원)의 4배 수준이다.

인텔은 2021년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했지만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파운드리 시장에선 고성능 서버용 반도체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 인텔 파운드리는 이 같은 고사양 반도체를 만들 기술력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2㎚(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급 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성공한다 해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한 수율(판매할 수 있는 제품의 비율)을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도 엔비디아 등에 밀려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인텔의 현실은 연일 주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경쟁사 엔비디아와 대조를 이룬다. 겔싱어 CEO가 취임한 2021년 1월 57.58달러였던 인텔 주가는 이날 29.99달러로 반토막 났다. 같은 기간 엔비디아 주가는 128.6달러에서 401.11달러로 3배 이상으로 올랐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국내 반도체 생산 지원 정책’에 희망을 걸고 있다. TSMC, 삼성 등 주요 파운드리 업체의 생산 공장이 해외에 있는 만큼 미국 정부가 자국 내 파운드리 시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