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 시달려오던 생브레뱅레펭 시장, 자택 방화 피해 후 사퇴
프랑스서 지난해 선출직 공무원 겨냥한 공격 32% 증가
[특파원 시선] 프랑스 민주주의에 드리운 폭력의 그림자
프랑스 서부 끝자락에 있는 해안 마을 생브레뱅레팽을 2017년부터 6년간 이끌어온 야니크 모레즈(62) 전 시장은 최근 임기를 3년 남겨놓고 사퇴했다.

지난 3월 22일 아내, 자녀와 함께 사는 자택에 한밤중 누군가 불을 지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하마터면 누군가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는 끔찍한 악몽이었다.

모레즈 전 시장은 망명 신청자 수용 시설을 학교 근처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한 2021년 말부터 극우 단체의 협박에 시달려왔다.

해당 시설은 그가 시장이 되기 전인 2016년에 세워졌고, 그동안 400여명을 수용했지만 사건·사고가 벌어진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뿐만 아니라 자택 우편함에 편지를 꽂아 넣는 등 오프라인에서도 협박이 이어졌다.

살해 위협도 있었다.

모레즈 전 시장은 지난 2월 7일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그런 유의 협박은 우리도 매일 받는다'는 식의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왔다며,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한 달 반 뒤 사건이 터졌다.

자동차 2대가 불에 타고, 집은 흉물스럽게 망가졌다.

경찰은 방화 혐의로 수사를 하고 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모레즈 전 시장은 집수리가 끝나는 대로 32년을 살아온 마을을 뜰 생각이다.

의사 출신인 그가 운영해온 병원도 6월에 문을 닫는다.

프랑스를 떠날 마음도 있다.

[특파원 시선] 프랑스 민주주의에 드리운 폭력의 그림자
2001년 처음 지역 정계에 발을 들인 모레즈 전 시장이 정치를 포기하게 만든 이 비극은 요즘 들어 프랑스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폭력 사건 중 하나다.

지난 3월 프랑스 내무부는 2022년 선출직 공무원을 겨냥한 신체적, 언어적 공격이 전년보다 32% 증가했다는 통계를 발표한 적이 있다.

프랑스 시장협회도 작년 한 해 동안 공격을 당한 시장, 부시장, 시의원 등은 약 1천500명으로 전년보다 15% 증가했다는 보고서를 지난 2월 공개했다.

이 수치들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정치를 한다는 이유로 폭력에 더 노출되고 있다는 경향을 보여준다.

올해 들어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년 연장을 골자로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혁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잦은 공격의 대상이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격의 화살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정치와는 상관없는 그 주변으로도 돌아갔다.

연금 개혁 반대 시위 중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대통령선거 1차 투표가 끝나고 지인들과 승리를 자축한 것으로 알려진 식당에 누군가 화염병을 던졌을 때는 분위기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연금 개혁 입법 절차가 모두 끝난 뒤에 개혁을 두둔하는 마크롱 대통령의 방송 인터뷰가 전파를 탄 날 마크롱 대통령의 아내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의 조카 손주가 집단 구타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달 24일 국무회의에서 모레즈 전 시장의 자택 방화를 비롯해 간호사, 경찰관이 목숨을 잃은 사건들을 언급하며 "비문명화(decivilisation)의 과정"에 비유했다고 일간 르파리지앵이 보도했다.

원인이 무엇이든, 형태가 어떻든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마크롱 대통령은 "근본적인 것에서는 타협할 수 없다"며 "심도 있는 대응"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의 주문이 실질적인 대책, 그리고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의 만류에도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은 모레즈 전 시장이 자신의 사임을 계기로 상황이 나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특파원 시선] 프랑스 민주주의에 드리운 폭력의 그림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