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와 사우디아라비아가 5년간의 외교 갈등을 종식하고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결정했다. 캐나다가 최다 수출 시장인 사우디아라비아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유를 무기로 내세운 사우디아라비아에 서방 국가가 굴복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캐나다-사우디, 5년만에 관계 회복

사우디아라비아 외무부는 24일(현지시간) 캐나다와의 관계가 정상화됐다고 선언했다. 캐나다 외무부도 이날 성명을 내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외교 관계를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해 11월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나 논의한 결과다. 또 지난달 아프리카 수단 군벌 분쟁에서 캐나다 국민을 사우디 정부가 구출하며 관계 회복이 급물살을 탔다.

캐나다 외무부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장 필립 린토 주사우디아라비아 신임 캐나다 대사를 발령하고 상호 존중과 공동 이익에 기반한 외교관계를 회복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로이터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캐나다에 대한 무역 보복 조처를 즉각 해제할 전망이다.

한 소식통은 로이터에 "텅 빈 협상 테이블에선 (우리의) 이익을 증진하지 못한다"며 "인권 같은 것도 캐나다의 이익을 증진하지 못 하는 건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2018년 인권 문제로 갈라서

캐나다 정부는 2018년 8월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이 캐나다 출신 여성인권 운동가를 억류하자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사우디 정부는 여성 인권운동가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펼쳤고 캐나다 시민권을 보유한 여성운동가 사마르 바다위를 국가 안보를 저해하고 적국과 공모한 혐의로 체포했다.

바다위는 자신이 원하는 남성과의 결혼을 막은 친아버지를 고소하는 등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2년 여성의 날에 '용기 있는 세계 여성상'을 받은 바 있다.
캐나다, 오일머니에 백기투항…사우디와 5년 만에 수교 회복
캐나다 정부는 인권 운동가를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지만, 사우디 정부는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했다. 사우디 당국의 이런 조치에 당시 캐나다 외무부는 "모든 평화적 인권 운동가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사우디 당국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외무부의 성명에 대해 사우디 외무부는 "캐나다 외무부의 성명은 매우 유감스럽고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사우디 정부는 캐나다와의 모든 신규 무역 및 투자 거래를 동결했다. 이어 사우디 외무부는 데이비 호락 주사우디 캐나다 대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 기피인물)'로 지정하고 자국에서 추방하기도 했다.

같은 해 벌어진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으로 인해 양국의 관계는 한층 악화했다.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튀르키예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한 뒤 살해됐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살해 배후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지목했다. 캐나다 정부는 즉각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서방국가의 제재에 동참했다.

중동 전체로 커지는 빈 살만의 힘

5년간 얼어붙었던 관계가 해빙된 건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원유 시장을 장악한 사우디아라비아에 서방 국가가 차례로 굴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우디가 지닌 원유시장 통제권과 오일머니에 굴복했다는 평가다. 로이터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캐나다의 최다 수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캐나다는 사우디에 총 22억 캐나다달러(약 2조 1409억원)를 수출했다. 수출품 대부분은 운송 장비로 이뤄졌다. 캐나다는 사우디로부터 24억달러 상당의 석유제품을 수입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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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뿐 아니라 서방 국가는 차례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손을 내밀었다. 미국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 시장이 요동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증산을 요청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지만, 빈손으로 돌아갔다. 되레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그해 10월 감산 발표했다.

원유를 무기 삼아 빈 살만 왕세자의 외교 역량은 더 확대됐다. 지난 7일에는 아랍연맹이 시리아의 재가입을 결정했다.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고 알아사드 정권이 민간인을 학살하자 연맹에서 퇴출한 지 12년 만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시리아 포섭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3월에는 중국의 중재를 통해 사우디는 이란과 외교 정상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발목을 잡던 안보 문제를 종식하자 외교의 폭이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중동 지역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미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빈 살만 왕세자는 적국과의 동맹을 꺼리지 않았다. 이란뿐 아니라 경쟁국인 카타르, 튀르키예 등과 밀착했고 예멘 내전을 중재하러 나서기도 했다.

트뤼도 정부의 전 외교 고문을 지낸 롤랜드 파리스 오타와대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제 중동 지역의 중추 역할을 맡게 됐다"며 "주요 국가와 소통하기 위해선 공식적으로 대사를 부임하는 게 이치에 맞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