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55번가에 있는 한 빌딩에 비어 있는 오피스. 임대료가 40%가량 이미 낮아졌지만 입주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소람 특파원
뉴욕 55번가에 있는 한 빌딩에 비어 있는 오피스. 임대료가 40%가량 이미 낮아졌지만 입주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소람 특파원
25일 찾은 뉴욕 맨해튼 32번가 주변의 한 빌딩. 화려한 브로드웨이 근처 미국 최대 백화점인 메이시스에 인접한 건물이지만 내부엔 먼지만 자욱했다. 고층부 오피스는 깔끔하게 리모델링을 마쳤음에도 텅 비어 있었고, 미국의 유명 유통 업체가 사무실로 사용하던 저층부에도 판촉용 마네킹만 자리를 지켰다.

같은 날 고급 오피스 지구 55번가의 30층짜리 고층 건물도 전체 층의 절반이 텅 비어 있었다. 임대료를 코로나 사태 이전 대비 40%가량 내렸지만 임차인을 찾지 못했다. 유명 관광지인 브라이언트파크 근처 건물에 입주해 있던 글로벌 공유 오피스 업체 위워크도 얼마 전 방을 뺐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공유 오피스 이용이 줄고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임대료가 싼 다른 지역으로 거점을 옮겼다”고 전했다.

미국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상업용 부동산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오피스 빌딩 거래가 뚝 끊기면서 사람이 없는 ‘좀비 빌딩’이 대거 쏟아지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미국 경제를 강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곳 중 1곳 '좀비 빌딩'…뉴욕 덮친 상업용 부동산 위기
오피스 공실 문제로 뉴욕 전역은 몸살을 앓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초 9%에 불과하던 맨해튼의 오피스 공실률은 올해 초 22%로 치솟았다. 10년 평균(12%)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 지역 부동산 투자 및 중개 업체인 PD프로퍼티스의 토니박 공동 대표는 “뉴욕의 오피스 두 곳 중 한 곳은 텅텅 비어 있고, 고점에서 50% 이상 낮춰 거래되는 빌딩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자리한 뉴욕에서마저 상업용 부동산의 몰락이 가시화한 건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다. 뉴욕 기반의 식음료 프랜차이즈 운영 및 부동산 투자 업체 VI그룹의 심경섭 상무는 “기업들이 거점을 줄이고 중심 상권의 오피스 한 곳만 남기고 있다”며 “메인 상권의 초대형 빌딩만 임대료가 유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반적인 임대 수요가 줄면서 건물주가 임대 수익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건물 매매가도 반토막 났다. 미국 부동산 정보 업체 코스타에 따르면 뉴욕 오피스 빌딩의 매매 가격은 제곱피트당 평균 1160달러에서 올 1분기 기준 650달러로 내렸다.

2곳 중 1곳 '좀비 빌딩'…뉴욕 덮친 상업용 부동산 위기
시장에서는 오피스 중심의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금융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공실이 늘고 건물 가치가 떨어질수록 부동산 투자자들의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잇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은행들이 대출 문턱을 높여 리파이낸싱(차환)이 어려워지는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미국 중앙은행(Fed) 등에 따르면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잔액(3조6000억달러) 중 60%가량은 미국의 지역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관계자는 “상업용 부동산발 지역은행의 위기를 주시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 은행 등 몇몇 은행이 사라졌지만 추가로 파산하는 은행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