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부하 경쟁시켜 권력 지켜온 푸틴체제에 균열 노출"
"프리고진, 수년 전 시리아 내전 개입 때부터 러 군부와 악연"
푸틴 통치술 역풍맞나…용병단장·군수뇌부 갈등 위험수위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러시아군 수뇌부 간의 갈등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구축한 권력 체제에 중대한 균열이 드러났다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은 최근 몇주 동안 프리고진과 군 수뇌부 간의 대립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면서 푸틴 대통령이 20년간 구축해온 가공할 권력 체계에 부담이 가고 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동안 잠재적 도전자를 견제하고자 부하들 간의 경쟁을 촉진해왔으며 이러한 술책은 그동안 대중의 시야에서 숨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프리고진이 군 수뇌부를 향해 잇따라 독설을 쏟아내 갈등 양상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기존 권력 체계를 유지하던 틀이 무너졌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그동안 러시아 고위 관리들을 자주 비난해온 프리고진은 최근에는 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프리고진은 지난 5일 영상에서 러시아군이 탄약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면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군 총참모장을 향해 "인간 말종", "지옥에서 불탈 것"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20일에는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점령을 선언하는 영상에서 쇼이구 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 "전쟁을 자기네 오락거리로 만들었다.

그들의 변덕 때문에 예상보다 다섯배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성토했다.

신문은 야당 등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소셜미디어에서 러시아군을 비판하는 것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이런 공개적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 작가였다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분석가 압바스 갈리아모프는 "이번 갈등을 보면, 러시아 엘리트들이 낸 결론은 푸틴이 이런 관계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갈리아모프는 "이는 푸틴이 너무 약해져서 수직적 권력 구조가 해체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전시에는 통일된 전선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임무이나 푸틴은 이를 달성할 능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한 미국 관리도 "(러시아 권력) 시스템은 단단하지만 부서지기 쉬워서 언제 깨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푸틴 통치술 역풍맞나…용병단장·군수뇌부 갈등 위험수위
일부 전문가는 프리고진이 아무 제약 없이 군 수뇌부를 비판하는 것이 푸틴 대통령의 용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첫 임기 중 총리를 지냈던 인물로 현재 망명 생활 중인 미하일 카시아노프는 "프리고진의 운명과 존재 자체는 전적으로 푸틴에게 달려 있다.

푸틴이 가면 프리고진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WSJ은 프리고진과 러시아군 수뇌부 사이의 갈등이 수년 전 시리아 내전 개입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했다.

프리고진이 관여하는 매체인 RIA FAN 통신사의 전쟁 전문기자로 지난 1월 암으로 사망한 키릴 로마노프스키의 회고록에 따르면 바그너 용병부대는 2016년 이슬람국가(IS)로부터 시리아 팔미라를 탈환하는 작전에 참여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으로부터 탄약 충분히 공급받지 못해 큰 손실을 봤고 포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프리고진과 군 수뇌부의 사이는 2018년 2월 바그너 용병부대가 시리아 데이르에즈조르의 유전 지역인 하샴을 공격한 것을 계기로 완전히 틀어졌다.

해당 지역에는 미군의 소규모 기지가 있었다.

바그너 부대의 포격이 시작되자 짐 매티스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쇼이구 장관에게 전화했는데 그는 "그들은 우리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에 미군은 곧바로 일대를 공습해 초토화했고 용병 수백명이 사망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침묵을 지켰다.

로마노프스키는 회고록에서 학살이나 다름없던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바그너 용병들은 러시아군 항공기와 방공망에 의해 보호될 것으로 믿었으나 "배신을 당했다"고 적었다.

푸틴 대통령이 바흐무트 점령을 치하한 지난 21일은 쇼이구 장관의 68세 생일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프리고진이 쇼이구 장관에게 로마노프스키의 회고록을 선물로 보낸 것으로 파악했다고 WSJ은 덧붙였다.

푸틴 통치술 역풍맞나…용병단장·군수뇌부 갈등 위험수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