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주에서 가톨릭 성직자 수백명이 70년간 2000명에 가까운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23일(현지시간) CNN, NBC 방송과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은 콰메 라울 일리노이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696페이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보고서에는 시카고 대교구를 포함한 일리노이주 6개 교구에서 1950년부터 2019년까지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 451명이 약 70년 동안 1997명의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한 내용이 담겼다.

이는 주정부 차원의 조사가 시작된 2018년, 가톨릭교회 측이 자체 집계한 가해자 숫자(103명)에서 4배 이상 불어난 결과다.

일리노이주 법무장관실이 10만 페이지 이상의 교회 기록을 샅샅이 검토하고 피해자 600여명과 접촉해 추가 가해자들을 적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보고서에 기재된 성학대 행위들은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난 데다 가해자 다수가 사망해 형사 기소는 물론 민사소송도 불가능할 전망이다.

일리노이주는 시효가 지난 아동 성범죄에 대한 한시적 소송을 허용한 캘리포니아, 뉴욕주와 달리 이 같은 제도를 시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울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 보고서가 권력과 신뢰를 이용해 무고한 아이들을 학대한 사람들과 그러한 학대를 은폐한 교회 지도자들을 드러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가해자들이 법정에서 책임을 부과받지 않더라도 여기에 그들의 이름을 적시함으로써 공적 책임을 지우고 오랫동안 침묵 속에 고통받아온 생존자들을 치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리노이주의 이번 조사는 2018년 펜실베이니아주의 가톨릭 성학대 실태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라울 장관의 전임자인 리사 매디건 전 장관이 착수했다.

이날 보고서에 담긴 일리노이 가톨릭교회 내 성학대 실태는 펜실베이니아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협의회에 따르면 일리노이주 인구의 약 27%는 가톨릭 신자로 미국 전역의 평균보다 그 비율이 높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