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량의 주택을 사모은 뒤 시세 차익 등을 노린 이른바 '빌라왕'이 최근 금리 상승으로 잇따라 몰락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세입자는 손실을 입지 않는다. 대신 빌라왕이 다단계식으로 모집한 투자자들은 대부분 돈을 떼이게 됐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인도 출신 부동산 투자자 제이 가자벨리는 유튜브 등을 통해 주택 사서 3년 만에 되팔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모아 미국 남부의 주택 7000가구를 매입했으나 최근 대거 압류당했다.

댈러스에 살던 가자벨리는 집값이 급등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부동산 업자로 변신했다. 그는 '선벨트'의 아파트 위주로 7000가구를 사 모았다. 5억달러(약 6500억원)의 자금과 대출을 동원해 휴스턴에서 손꼽히는 주택임대업자가 됐다. 웨비나 등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주택을 고쳐서 3년 뒤에 팔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하고 자금을 끌어모았다.

처음엔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 듯했다. 넘치는 유동성과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서 피닉스의 원 베드룸 아파트의 평균 임대료는 2021년 1월 이후 37% 상승했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추운 북부에서 살기 좋은 남부로 이주하려는 수요가 늘어나고 주택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집값도 올랐다.

그러나 금리가 지난해부터 급상승하면서 가자벨리의 왕국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지난 4월 대출 원리금 연체로 4개의 임대 단지에서 30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압류당했다. 다만 한국과 달리 전세 제도가 없는 덕분에 세입자의 피해는 없었다. 전세금 대신 미국에선 온라인으로 모집한 투자자들이 대거 손실을 보게 됐다. 조안 헤민웨이 테네시대 교수는 "상장 기업 주주와 달리 부동산 소액 투자자들은 법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며 투자 지출에 대한 발언권도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전역에서 이 같은 사건이 판박이처럼 일어나고 있다. WSJ가 증권거래위원회(SEC) 서류를 분석한 결과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부동산 업자들이 투자자로부터 최소 1150억 달러를 모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루이지애나 출신의 전직 자동차 세일즈맨 그랜트 카르도네는 부동산 업자로 변신해 430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끌어모았다. 그의 회사는 2019년에 6억 1800만 달러 상당의 아파트를 매입했다. 2020년 12월의 한 프레젠테이션에서 그는 "연 수입이 40만 달러에 불과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내 자가용 비행기에만 1년에 270만 달러가 든다"고 자랑했다.

이들 부동산 업자들의 몰락으로 지역 금융기관의 피해도 예상된다. 피닉스 지역 부동산 기업 아코라 에셋의 콜린 랄스 대표는 "집을 대량으로 보유한 곳이 자산을 제대로 처분하지 못하면 집값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할 것"이라며 "지역 은행 등 대출 기관도 큰 손실을 입을 위험에 처했다"고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