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조합원들의 표심을 무기 삼아 행정부의 핵심 의제를 반대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민의 노조 지지율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곳곳에서 노사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美 자동차노조, "전기차 지원하는 바이든 지지 철회"

3일(현지시간)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지지를 철회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전기차 전환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이유에서다. UAW는 북미 지역에서 40만명 이상 조합원을 보유한 미국 최대의 제조업 산별노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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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W는 바이든 정부가 전기차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 더 나은 대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UAW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가 오하이오주에서 가동하는 전기차 배터리 공장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16.5달러로 집계됐다. 2019년 문을 닫은 내연차 공장의 평균 임금의 절반 수준이다.

숀 페인 UAW 위원장은 "연방 정부는 조건이나 대책 없이 전기차 전환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며 "노동자들에게 EV 전환은 바닥을 향한 경주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전환을 위해 미래 근로자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전환은 바이든 정부의 핵심 의제 중 하나다. 2030년까지 승용차 중 절반을 전기차로 대체할 것이란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차량 중 전기차는 5.8%였다.

지난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발효하며 전기차 구매자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환을 추진했다. 환경 규제를 강화해 내연차를 퇴출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로이터에 따르면 환경보호청(EPA)이 내연차 탄소 배출 기준을 강화해 2032년까지 전기차 비율을 67%까지 늘릴 방침이다.

UAW가 전기차 전환에 반대하는 이유는 생산방식 때문이다. 내연차에 비해 공장 조립방식이 더 단순하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공장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UAW의 지지 철회는 바이든 대통령 재선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활동 중인 UAW 조합원은 40만명이지만, 은퇴자 60만명을 합치면 100만명에 달한다. 미국 자동차 기업의 쇠퇴로 조합원 수가 감소하자 대학 노동자를 포섭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

미 전역서 벌어지는 노사갈등

UAW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라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노조도 속속 나오고 있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메릴랜드주 애플 노조가 소속된 국제 기계공 및 항공우주노동조합은 애플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애플 점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소비자로부터 팁을 받을 수 있게 시스템을 개선하라는 게 노조 요구사항이다. 소비자들이 결제하는 금액의 3~5%가량을 팁으로 지불할 수 있게 해달라는 주장이다.

애플 노조는 휴일 수당 인상과 더불어 경조 휴가를 45일로 확대하고, 반려동물도 휴가 신청 사유로 넣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노조 요구사항이 업계에서 이례적인 사안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일부 노조원은 터무니없는 요구에 협상이 교착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 노조는 다른 기업과 비슷한 조건을 두고 협상했다며 진정시키는 중이다.

택배회사 UPS 기사들이 소속된 노조인 국제운전사형제단(IBT)는 7월 31일까지 사측과의 임금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총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UPS 소속 택배기사는 34만여명으로 매일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를 운송한다. UPS가 운송을 멈추게 되면 미국 경제가 마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아메리칸항공(AA) 조종사를 대표하는 연합 조종사협회(APA)는 지난 1일 파업 결의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율 96%, 찬성률 96%로 파업에 돌입했다. 투표가 이뤄진 게 이례적이란 반응이다. 조종사들의 파업엔 연방 국가조정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기각될 가능성이 높아 실제 파업이 이뤄지진 않는다.

미국작가조합(WGA)도 지난 2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OTT 열풍이 확산하고 있지만 방송 작가의 처우는 악화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날부터 작가 조합 소속 1만 5000여명이 집필을 중단하며 심야 토크쇼 프로그램이 신규 방송을 내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WGA가 총파업에 나선 건 2007년 이후 16년 만이다.

노조 지지율은 60년만의 최고치

미국 노조가 연달아 목소리를 높인 배경엔 대중들의 강력한 지지세가 있다.

지난해 9월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노조 지지율은 71%로 1965년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2019년 64%에서 2021년 68%에 이어 70%대를 웃돈 것이다. 응답자 대부분은 노조를 지지한 이유로 '임금 체계 개선'을 꼽았고, '노동자의 권리 수호'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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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노조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2일까지 미국 성인 5000여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60%가량이 "노조 가입률이 떨어지면 근로자와 국가 경제 모두에 안 좋다"고 답했다.

갈수록 노조 가입률이 떨어지는 데 따른 반응이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노조 가입률은 10.1%를 기록했다. 역대 최소치다. 1950년대에는 미국 노동자 3명 중 1명꼴로 노조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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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지지도는 높아졌지만, 가입률이 떨어진 현상을 두고 '노조 역설'이 벌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노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커졌지만, 노조의 세력은 쇠퇴하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수레시 나이두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노동법은 노조를 결정하는 데 오히려 방해된다"며 "되레 기업이 합법적으로 노조 결성을 방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7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27개 주에서 노동권 법안이 통과됐다.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으로 노조 가입 및 노조 회비 납부를 강제할 수 없도록 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기업 경영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근로자를 비교적 좋은 조건에 채용할 수 있어 친기업 노동법으로 불린다. 노조의 힘이 약화하면서 결성까지 걸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노동조합 결성 후 단체교섭권을 얻어 사측과 협상에 나서는 시점까지 평균 456일이 걸린다.

자동화도 노조를 약화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전통적으로 노조원 수가 가장 많았던 제조업계에 공장 자동화가 확산하며 인력이 크게 줄었다. 조합원 확보가 어려워진 노조는 서비스업으로 눈을 돌렸다. 아마존, 애플, 스타벅스에서 잇따라 노조가 결성된 이유다.

다만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노조가 결성되면 이전보다 결집력이 약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업장별로 노조를 구성하다 보니 사측의 차별대우를 받기 십상이라서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단체 행동에 나서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나이두 교수는 "이런 현상은 프랑스처럼 노동 친화적인 국가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라며 "노조의 장기 쇠퇴를 막으려면 강력한 풀뿌리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