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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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기 회복으로 상승하던 국제 유가가 다시 하락했다. 퍼스트 리퍼블릭의 1분기 실적이 공개된 뒤 미국 은행 위기 재발 우려가 커진 탓이다. 미국 경제가 둔화하고 있다는 지표도 연달아 나오며 원유 시장에서 위험 회피 심리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2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 대비 1.69달러(2.15%) 하락한 배럴당 77.0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6월물 브렌트유는 1.92달러(1.18%) 내린 80.81달러로 집계됐다. 전날 상승폭이 모두 상쇄된 것이다.
은행 위기에 경제 둔화 공포까지…2% 급락한 국제 유가 [오늘의 유가]
은행 위기가 재발할 것이란 공포가 확산하며 유가가 떨어졌다. 전날 발표된 퍼스트 리퍼블릭의 올해 1분기 실적이 전망치를 크게 밑돌았다. 올해 1분기 퍼스트 리퍼블릭의 총예금은 1044억달러로 작년 말 대비 40% 급감했다. 대형은행의 예치금액(300억달러)을 제외하면 3개월 만에 1000억달러 규모의 예금 인출이 일어난 것이다.

은행 위기가 곧 대출 둔화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UBS그룹은 "지난달 은행 위기가 처음 터진 뒤 상업 대출, 산업 대출, 회사채 등 대출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라고 강조했다.
은행 위기에 경제 둔화 공포까지…2% 급락한 국제 유가 [오늘의 유가]
경제가 둔화했다는 지표가 연달아 발표되며 원유 시장에서 위험회피 심리가 증폭됐다는 분석이다. 이날 컨퍼런스보드(CB)는 미국의 이번 달 소비자신뢰지수가 101.3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시장 전망치인 104를 크게 밑돌았다. 지난해 7월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미국 대서양 연안 중부 지역의 제조업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리치먼드 제조업지수도 이번 달 -10을 찍으며 전망치(-8)를 밑돌았다.

캐나다 임페리얼 상업은행(CBIC)의 수석 에너지 트레이더인 레베카 바빈은 블룸버그에 "원유 시장에선 단기 투자자들만 거래하고 있다"며 "장기 투자자들은 중국의 경기 회복과 미국의 침체를 주시하며 매매를 미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내 석유 재고는 감소하는 추세다. 미국 석유협회는 원유 재고가 이번 주에 608만배럴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4~21일 미국 내 상업용 원유 비축량은 전주 대비 7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같은 기간 미국 유조선에 저장된 원유 규모는 전주 대비 4% 감소한 9869만배럴로 집계됐다.

셰일가스의 산지인 미국 남부 퍼미안 분지에선 시추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지난주 590개의 시추 장비가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627개에서 30여개 감소한 수치다. 2018년 888개와 2014년 1609개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퍼미안 분지의 셰일가스가 고갈되고 있다는 신호란 분석도 나온다.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감산 조치도 유가를 끌어올릴 전망이다. OPEC+ 회원국은 오는 5월부터 연말까지 하루 116만배럴을 추가로 감산할 계획이다. 러시아도 3월부터 이어온 하루 50만배럴의 감산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튀르키예의 이라크 원유 수출 중단 사태도 유가 공급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