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테레비도쿄, 그립네요. 한국에서도 위성방송(BS)으로 (테레비도쿄의) '가이아노 요아케(ガイアの夜明け)'를 봅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회의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일본 민영 방송국 테레비도쿄의 돌발 취재에 응하면서 한 말이다. 이재용 회장은 일본의 사학 명문 게이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이 회장은 지난 2월 신입사원 간담회에서 "외국어 공부를 더 안 한 게 후회된다. 영어와 일본어는 하는데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라며 외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 TV 프로그램 시청 역시 일본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이 회장이 언급한 가이아노 요아케는 장수 경제 다큐멘터리다. '대지의 아침'이라는 뜻이다.

"경제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경제 뉴스의 뒷면을 쫓아갑니다"라는 소개글 답게 굵직굵직한 경제 이슈 뿐 아니라 '영세 공장의 드라마'와 같이 일본의 중소기업이나 장인들을 밀착 취재하는게 특징이다.
"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이재용 부회장이 대지의 아침을 즐겨보는 이유도 일본의 경제 트랜드는 물론 제조강국 일본을 지탱하는 중소기업의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중소기업 다섯 곳을 한꺼번에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지난 2월7~8일 일본외신기자클럽(FPCJ)의 프레스투어를 통해 얻었다.
"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한국경제신문은 한국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참가해 히로시마 지역의 강소기업 다섯 곳을 취재했다. 다섯 개 기업들은 모두 신발, 섬유, 금형, 정미, 양조 등 소위 사양산업이 주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중국과 동남아의 저가 공세에 밀려 기업들이 진작에 사업을 접거나 인건비가 싼 해외로 이전한 업종들이다.

경쟁사들의 움직임과 반대로 인건비 비싼 일본에 남아서 세계 1위 또는 일본 1위를 지키는 비결을 연재한다.
"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첫번째 탐방 기업은 일본 최대 청바지 원단(데님) 제조사 가이하라데님이다. 가이하라데님은 일본 청바지 원단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 리바이스와 갭, 일본 유니클로 등 유명 업체들이 가이하라데님을 사용한다.
"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1893년 창업한 가이하라데님은 기모노 직물, 그 가운데서도 남색 기모노 직물을 전문으로 만들던 기업이었다. 기모노 직물을 만들던 회사가 일본 최대 청바지 원단 업체로 변신한 것이다. 가이하라가 위치한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는 200~300년 전부터 면 생산량이 풍부한 지역. 면으로 실을 만들고 물을 들이는 염직물 사업이 융성했다.
"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가이하라의 위기는 일본인들의 의상이 기모노에서 캐주얼로 변하면서 찾아왔다. 가이하라는 1970년 업종을 기모노 직물 생산에서 데님 생산으로 바꾼다. 4대째 사장인 가이하라 마모루 사장은 가업을 기모노에서 청바지로 바꾸는 모험을 한 이유로 두가지를 들었다.
"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먼저 일본의 학생운동이 활발해진 1970년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청바지를 입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가이하라 사장은 앞으로 청바지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확신했다.

다음으로 기모노든 청바지든 원단에 물을 들이는 사업이니까 가이하라가 잘 할 수 있다고 봤다. 당시 청바지는 가이하라가 100년 가까이 주업으로 삼았던 남색이 대부분이었다. 가이하라 사장은 '이거라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라고 확신했다.
"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시장의 변화를 예상하고, 자사의 주특기를 정확히 파악해 결합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통찰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섬유산업의 주도권은 이미 한국과 같은 신흥국들에 넘어가던 시기였다. 가이하라 마모루 사장도 "일본의 섬유산업이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할 때 데님을 만들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가이하라데님은 위기를 어떻게 돌파했을까.

히로시마=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