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對中장비수출통제 강화 전망…K반도체, '기회의창' 좁아지나
상무부 "한국과 관계 중요" 강조…美, 추가 조치 때 한국 배려 주목
당장 최악은 피했지만…더 촘촘해지는 美의 對中 '반도체 견제'
미국 상무부가 21일(현지시간) 공개한 반도체 지원법상 이른바 '가드레일' 규정에서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되면서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업체들은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차이나 리스크'를 줄이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미국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세부 조건도 충족해야 하는 데다 미국이 추가적인 조치를 통해 대(對)중국 수출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돼 지금껏 한국 업체에 큰 기대를 안겨줬던 중국 시장에서 '기회의 창'은 점점 더 좁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최악은 피했지만…더 촘촘해지는 美의 對中 '반도체 견제'
◇ 법상 '10년 금지', 세부 규정서 제한적 허용 = 상무부가 발표한 가드레일 규정의 핵심은 첨단 반도체 공장도 5% 이내의 범위에서는 생산 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과 기술 개발을 통해 한 웨이퍼(반도체 제조용 실리콘판)에서 더 많은 반도체 칩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정부에서 반도체 관련 보조금을 받아도 중국에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신규 투자를 통해 첨단 반도체 제조 시설을 추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반도체 법에서는 미국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의 '실질적 확장(material expansion)'을 금지하도록만 돼 있었는데 세부 규정에서 조건을 구체화하면서 내용상 규제가 다소 완화된 것이다.

여기에다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능력 확장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생산을 더 늘릴 수 있는 옵션도 중국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안도감을 주는 대목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10월 포괄적인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포괄적 허가 방침을 밝혔다.

허가 기간이 올 10월까지이기 때문에 추가 연장이 필요하지만, 중국 내 한국 기업의 경우 일단은 중국 공장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장비 수입이 가능하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한국 기업이 기술적인 개선을 통해 한 웨이퍼에서 만들어내는 반도체 개수를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상무부 고위당국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일부 기업의 경우 사업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술 수준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서 "기업들이 수출통제를 준수하고 수출 통제기관의 허가가 있는 한 그런 업그레이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상무부가 5%의 제한을 받는 첨단 반도체의 기준을 제시하면서 로직 반도체 기준을 대중국 수출 통제 조치에 비해 상향하면서도 한국 기업과 관련된 D램과 낸드플래시 기준은 동일하게 유지한 것과 기술적 업그레이드는 허용한 것 등을 두고 한국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상 보조금에서 한국산 전기차를 차별한 데 이어 반도체 지원법에서도 각종 조건을 내걸면서 한국 내 대(對)미국 투자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미국 정부에서 나름대로 배려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상무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한국, 대만, 일본 언론만 별도로 불러서 반도체 지원법과 가드레일 규정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고위당국자는 이 자리에서 "우리는 한국과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들에 속하고 우리는 진심으로 미국 반도체산업에 외국인 투자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당장 최악은 피했지만…더 촘촘해지는 美의 對中 '반도체 견제'
◇ 보조금 우려 조건 여전…미국의 대중(對中) 통제 조치는 지속 강화 = 반도체법상 가드레일 규정에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다른 보조금 조건에 대한 우려는 여전한 상태다.

상무부가 지난달 28일 반도체 생산지원금 신청 안내에서 공개한 ▲ 수익이 전망치를 초과할 경우 미국 정부와의 이익 공유 ▲ 군사용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 여부 평가 ▲ 반도체 관련 공동연구 참여 등의 기준이 그것이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도 지난 8일 방미 때 기자들과 만나 지원 기준에 대해 "우려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과도한 정보를 요청한다거나, 중국 비즈니스와 관련해서 제한을 많이 건다거나 이게 워낙 변동성이 큰 산업인데 초과 이득 이런 부분들도 어떤 식으로 시행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특히 인플레이션으로 삼성전자의 텍사스주 테일러시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이 10조5천억원 이상 초과할 것이란 언론 보도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반도체 보조금에 여러 부담스러운 조건이 붙는 것이 한국 기업들의 우려를 더 키우는 모습이다.

나아가 미국은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중국을 '유일한 전략적 경쟁자'로 지목하고 미국의 기술이 중국의 군 현대화에 사용되는 등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의 가드레일 세부 규정에서 보듯이, 당장 미국과 거래하면서 중국에서의 사업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국과 관련된 업체가 중국에서 반도체 사업을 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란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현재 한국 기업의 경우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와 관련해 미국 정부로부터 한시적인 포괄적인 허가를 받은 상태지만, 허가 내용이나 기준 등과 관련해서 향후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수출통제를 담당하는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앨런 에스테베스 차관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삼성과 SK에 제공한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통제 1년 유예가 끝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는 또 지난해 10월 발표한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를 더 강화하는 추가 조치를 다음 달께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미국은 이미 반도체 생산장비 강국인 네덜란드 및 일본 등과 조율해 중국에 수출이 금지되는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 규모를 기존 17개에서 두 배로 늘릴 예정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 10일 보도한 바 있다.

당장 최악은 피했지만…더 촘촘해지는 美의 對中 '반도체 견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