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시 주석이 제안한 우크라이나전 평화 중재안을 논의했다. 시 주석은 내년 대선을 앞둔 푸틴 대통령의 권좌 유지를 공개 지지했다. 양국의 반미 공조가 더욱 깊어지는 가운데 미국은 러시아의 철군 없이는 이번 중·러 정상회담이 발전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3연임’ 시진핑, 러시아 방문

중국 신화통신과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21일 오후 3시부터 양국 대표단이 정상회담을 했다. 두 사람은 ‘포괄적·전략적 협력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논의한 뒤 국빈만찬을 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전날 4시간30분에 걸쳐 비공식·비공개 회담을 진행했다. 이어 이날도 양국 공조와 관련한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은 중국 정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제안을 논의했다.

중국은 12개 항으로 구성된 제안을 통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직접 대화 재개와 휴전 △핵무기 사용 및 핵시설 위협 금지 △미국과 유럽의 대러시아 제재 중단 등을 촉구했다. 각국의 주권과 독립, 영토 완전성 보장, 각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 존중 등 기존 입장도 다시 강조했다.

두 사람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해 2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데 이어 9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정상회담을 했다. 시 주석은 지난 10일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돼 공식 3연임을 시작한 후 첫 번째 해외 방문지로 러시아를 선택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도착한 시 주석을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3연임을 축하했다. 시 주석은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러시아 국민이 반드시 당신에게 계속 견고한 지지를 보낼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정상이 상대국 선거에 공개 지지를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할 것도 요청했다. 그는 이날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어제(20일) 푸틴 대통령이 연내에 중국을 방문하도록 공식 초청했다”고 밝혔다.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전쟁 관련 최악의 시나리오는 푸틴 대통령이 실각하고 러시아에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러시아 정세가 푸틴 대통령을 중심으로 안정되고 중·러 관계도 우호적으로 유지해야 중국이 최대 현안인 미국과의 전략 경쟁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란 진단이다.

美 “중·러 관계는 정략결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중국의 제안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지 철수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중국이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비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0일(현지시간) 중국의 평화 중재안과 관련해 “모든 국가의 영토 및 주권 존중이 요점이라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철수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커비 조정관은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 영토에 남겨 두는 휴전은 러시아의 불법 점령을 인정하고 러시아가 유리한 시점에 전쟁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를 철수하도록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을 압박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러 관계와 관련해 “두 나라 모두 미국의 리더십과 규칙에 기반한 세계 질서에 불만을 품고 화를 내는 나라”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 주석은 푸틴 대통령을 잠재적 동맹으로 보고,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을 일종의 생명줄로 본다”며 “애정이라기보다는 정략결혼”이라고 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