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B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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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정부가 국민에게 단백질 음식으로 고기 대신 닭발을 먹으라고 권장해 국민들의 분노가 치솟은 가운데 이집트 경제 상황은 날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집트 한 가금류 시장에서 “하늘이시여, 우리가 닭발을 먹게 내버려 두지 마옵소서”라는 한 남성의 외침과 함께 빈곤으로 발버둥 치는 이집트의 일상을 19일(현지시간) 영국 BBC가 전했다.

이집트가 기록적 통화위기와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식료품 가격이 치솟자 이집트 국립영양연구소는 지난해 말 “예산을 절약할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 대안으로 닭바 소발굽 등을 추천한다”며 사람들에게 닭고기 대신 닭발을 먹는 것으로 바꾸라고 권했다가 이후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세계 각국들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특히 이집트는 물가 상승률이 30%에 달할 정도로 가장 고통을 받는 나라 중 하나다. 식용유와 치즈와 같이 기본적인 주식이었던 식료품은 이제 감당할 수 없는 사치품이 돼버린지 오래다. 몇 달만에 가격이 두 배, 세 배로 오른 제품도 있다.

이집트는 통화위기도 심각하다. 이집트 통화(이집트파운드) 가치는 달러 대비 거의 반토막 났다. 이집트 정부는 지난 1월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해 환율을 조정했는데, 통화가치 평가 절하는 수입 비용을 상승시켜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또한 인구가 1억명이 넘는 이집트는 식량을 수입에 의존해 타격이 컸다. 닭에게 먹이는 곡식도 해외서 들여온다. 이집트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밀 수입국인데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더욱 직격탄을 맞았다. 두 나라는 이집트의 주요 공급국이다. 전쟁으로 밀과 빵가격은 치솟았다.

세 자녀를 둔 60대 여성은 “한달에 한번 겨우 고기를 먹을 지경”이라며 “요즘 계란 한 알도 5이집트파운드(약 0.16달러)에 달한다”고 한탄했다. 매달 연금 5000이집트파운드를 받는 그녀는 1년전에는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다른 이집트인들처럼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 “닭고기 1kg당 가격이 200이집트파운드에 달하는 곳도 있다”며 “닭다리는 90이집트파운드지만 닭발은 겨우 20이집트파운드”라고 비꼬아 말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경제난의 원인을 줄곧 2011년 이집트 봉기와 급속한 인구 증가로 돌려왔다. 이제는 팬데믹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한다. 수입 물가가 치솟고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담당하던 관광업은 이미 팬데믹으로 크게 축소됐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실책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싱크탱크인 타흐리드 중동정책연구소의 정치경제학자 티모시 칼다스에 따르면 “엘시시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국가 장악력이 커졌고 인프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정권이 소유한 기업이 차지하면서 결과적으로 민간 기업들의 영역이 쪼그라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권에 소속되지 않은 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려났고 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집트를 떠났다”고 설명했다.

이집트는 IMF에 지난 6년간 4차례나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부채는 GDP의 90%에 육박하는데 세수의 절반이 빚을 갚는데 쓰인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들이 정부 자산을 사들여 이집트를 지원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이를 명분으로 더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투자하고 있다. 서방과 걸프만의 이웃국가들은 중동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이집트 붕괴를 걱정하고 있다. 이집트는 과거 경제난이 폭동으로 이어지며 모하메드 무르시 전 정권을 붕괴시킨 경험이 있다. 이번 경제난과 대중의 분노가 다시 이런 불안을 야기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최긘 한 이집트 주부는 소셜미디어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겨냥해 “당신에게 투표한 것을 후회한다”며 “우리의 삶은 지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조영선 기자 cho0s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