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흑해에서 발생한 공중 충돌 사건을 놓고 책임 공방을 이어갔다.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양국 국방장관이 전화 통화를 하는 등 고위급 대화 채널을 가동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15일(현지시간) 국방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날 흑해 상공에서 미국 드론과 러시아 전투기가 충돌한 사건과 관련해 “실수하지 말라”고 러시아에 경고했다.

오스틴 장관은 “이 위험한 사건은 국제 공역에서 러시아 조종사들이 범한 위험한 행동 패턴의 일부”라며 “러시아는 군용기를 안전하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운용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국제법이 허용하는 곳은 어디든 비행하고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견에 동석한 마크 밀리 합참의장도 “러시아의 공격적 행동은 고의적인 것이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서도 “러시아와 군사적 갈등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조사를 진행하면서 국제 공역에서 우리의 권리 행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조치에 대해 “무모하고 안전하지 않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미국이 출입금지 구역을 침범했다고 맞받아쳤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자국 뉴스채널 로시야24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우리가 흑해 연안에 비행제한구역을 설정한 것을 미국이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대사는 이날 “누구도 러시아 해역을 침범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에 경고했다”고 전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번 사건이 전면적인 무력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대화를 이어나갔다. 양국 국방장관이 전화 통화를 한 데 이어 합참의장들도 전화로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는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번 분쟁 시작부터 매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전화 브리핑에서 “러시아는 건설적 대화를 피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확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는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번 사건은) 푸틴이 다른 당사자를 끌어들여 분쟁 지역을 확대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한편 로이터는 16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MIG-29 전투기 4대를 지원할 것을 공언했다고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에 전투기 지원을 호소했으나 서방국가는 확전을 우려해 전투기 지원을 주저해왔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