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이 폐쇄된 10일 사람들이 본사 정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샌타클래라=서기열 특파원
실리콘밸리은행이 폐쇄된 10일 사람들이 본사 정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샌타클래라=서기열 특파원
미국 금융당국이 폐쇄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예금을 100%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은행 파산으로 인해 금융시장 전반에 미칠 파장을 차단하기 위해 미 금융당국이 아시아 증시 개장 전 발 빠르게 SVB의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발표한 것으로 평가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12일(현지시간) 미 중앙은행(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공동 성명을 통해 "FDIC가 SVB에 예금한 모든 고객의 예금을 완전히 보호하는 방식으로 SVB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SVB에 예금을 보유한 고객들은 13일 월요일 은행 문이 열리면 모든 예금에 접근 가능해진다. 금융당국은 성명서를 통해 "은행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강화해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Fed는 별도로 성명을 내고 예금 인출이 몰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 압력에 대처할 준비가 됐다"며 은행의 예금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은행 등 금융사가 보유한 액면가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제공하는 '뱅크 텀 펀딩 프로그램(BTFP·Bank Term Funding Program)'을 준비중이다. 은행을 비롯해 저축 협회, 신용조합 등에 최대 1년 동안 대출을 제공한다는 게 골자다. Fed는 "예금을 보호하고 경제에 돈과 신용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은행 시스템의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VB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자산이 2090억달러이며 총예금이 1754억달러다. 자산의 상당 부분이 장기채권이다. 지난해 금리인상으로 평가가치는 낮아졌지만 액면가 기준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예금 인출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재무부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외환안정기금(Exchange Stabilization Fund)에서 최대 250억달러를 뱅크텀펀딩프로그램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Fed는 "이 자금을 이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선을 그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대출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는 예금자보호한도(25만달러)를 초과한 예금을 보유한 고객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SVB에 예치된 1754억달러의 예금 가운데 85%인 1515억달러는 예금자보호한도(25만달러)를 초과한 예금인 것으로 파악된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과 VC 등 투자자 가운데 절반 가량이 그 고객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예금이 보호받지 못하면 스타트업과 VC의 상당수가 SVB 파산으로 운영자금이 부족이라는 사태에 처하게 된다. 이들이 당장 월요일에 예금을 인출하지 못할 경우 당장 15일로 예정된 급여지급마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빠른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금융 당국은 SVB 관련 대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메우는 데 세금을 투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주주나 일부 무담보 채권자는 보호되지 않는다고 밝혀. 옐런 재무장관은 앞서 "구제금융을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예금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금융당국은 10일부터 주말 동안 폐쇄된 SVB를 인수할 인수자를 찾기 위해 집중하고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CNBC가 보도했다. PNC가 관심을 보였지만 한발 물러섰다고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전했다.

13일 개장 전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금융당국의 발빠른 조치에 12일 오후 미국 주식 선물은 상승했다. S&P500 선물은 0.7%, 나스닥100 선물은 0.9% 올랐으며 다우지수 선물은 170포인트 상승했다.

실리콘밸리=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