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둔화했을지 몰라도 여전히 뜨거운 노동시장에서 직급 인플레이션(title inflation)은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지난 1월 실업률은 3.4%로 1969년 5월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미국 매체 인사이더는 7일(현지시간) 채용정보업체 데이터피플이 구인 공고 240만건을 분석한 자료를 인용해 2019년 이후 미국의 저연차 기술직 채용 공고에서 ‘리드(lead)’ 단어 사용량이 3배 늘었다고 보도했다. 저연차 직무에는 걸맞지 않게 업무를 주도한다는 표현이 채용 공고에 남용됐다는 뜻이다. 핵심 업무를 수행할 것임을 암시하는 ‘주요한(principal)’이라는 단어 사용량은 57% 늘었다. 반면 과거엔 저연차를 뜻하는 단어로 널리 통용됐던 ‘주니어(junior)’ 사용량은 반으로 줄었다. 데이터피플에 따르면 기술직 외 다른 직군에서도 이 같은 직급 인플레이션이 만연하다.

인사이더는 미국 노동시장에서 직급 인플레이션이 이어지는 이유를 근로자와 고용주의 이해관계 합치로 들었다. 미국 연방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관리자급 미만 직원에게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버드대와 텍사스대 연구진이 지난달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고용주 중에서는 고객 응대를 하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 ‘첫인상 담당 책임자(directors of first impressions)’, 카펫 관리자에 ‘청소 매니저(shampoo managers)’ 같은 직함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이들 기업은 연간 40억달러 이상의 초과근무수당 지급을 피했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기업에 직급 인플레이션은 비용이 들지 않는 인재 유치 수단이다. 고(高)임금이나 복지 혜택 확충에는 돈이 들지만, 직급을 올려 주는 건 ‘무료’기 때문이다. 금융사 등 외부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직군이 많은 업종에서 특히 직급 인플레이션이 심하다. 미국 은행 골드만삭스는 한때 직원 3분의 1에 부사장(vice president·VP) 직함을 줬다.

Z세대의 승진 기대치가 전 세대보다 커진 점도 직급 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꼽힌다. 직급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진 결과다. 직원 리뷰 사이트인 잡세이지가 설문한 결과 Z세대 응답자 중 58%가 1년 반마다 승진할 것을 기대한다고 답했다. 베이비부머 세대(20%)나 X세대(27%)의 기대치를 웃돌았다. Z세대는 VP로 승진하기까지 3~6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베이비부머의 답(10년 이상)보다 단기간이다.

인사이더는 “직급 인플레이션 결과 기업들의 아이디어도 바닥나 ‘선임 운영 부사장(senior executive vice president)’과 같은 괴이한 직급까지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직급 인플레이션이 구인에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마리암 자한샤히 데이터피플 연구원은 “주니어 재무 재무분석가 채용 공고에 ‘시니어’ 표현을 넣으면 적격 지원자가 39% 줄어든다”며 “저연차는 화려한 직함에 지원을 꺼리게 되고, 고연차는 실무에 있어 자신의 기존 경력이 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저연차 채용할 때 주니어라고 하지 마라"…美의 과도한 직급 인플레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