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남부 조지아주에 사는 맨디 크로프트(39)씨는 가족들에게 '가금류 공주'란 별명으로 불린다. 페이스북에서 양계에 관련된 그룹을 운영하며 유명 인사가 돼서다. 크로프트씨는 닭을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매일 수 십명에게 메시지를 받는다.

크로프트는 "많게는 수 백 건의 문의 메일을 받기도 한다. 이게 다 계란값이 폭등해서 생긴 일"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계란값이 고공 행진하자 닭을 직접 키우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구글에서 '닭 키우기(Raising chickens)'를 검색하는 빈도는 지난달 급증하기 시작했다. 1년 전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수요가 늘자 병아리 가격도 급격히 인상됐다. 미국 내에서 병아리 도매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15% 증가했고, 소매가격은 15~18% 더 비싸졌다.

미국 대형 양계업체 메이어 해처리의 메간 하워드 마케터는 "이미 대다수의 닭 품종이 동났다"며 "소비자들이 식량 안보를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사람이 집에서 닭을 키우려고 하는 추세가 거세지고 있다"고 했다.

미 양계업체 맥머레이에 따르면 갈색 계란을 낳는 암평아리 한 마리당 4달러가 든다. 닭장을 짓는 데에는 소형인 경우 수 백달러를 써야 하고, 규모를 늘릴 경우 수 천달러까지 들 수 있다. 초기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닭을 직접 길러 계란을 얻는 게 더 저렴하다는 설명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내 계란 평균 가격은 작년 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3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값이 치솟고 연료비용이 늘어나자 닭 사육에 드는 비용이 고공행진 한 탓이다.
구글에서 '닭 키우기(Raise Chicks)'를 검색한 추이. 2023년 1월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자료=구글 트렌드
구글에서 '닭 키우기(Raise Chicks)'를 검색한 추이. 2023년 1월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자료=구글 트렌드
키워드 '닭 키우기' 를 구글에서 검색한 빈도를 나타낸 지도. 뉴햄프셔주에서 검색 빈도가 가장 많았다. 자료=구글트렌드
키워드 '닭 키우기' 를 구글에서 검색한 빈도를 나타낸 지도. 뉴햄프셔주에서 검색 빈도가 가장 많았다. 자료=구글트렌드
계란 가격이 급등한 배경엔 지난 2월 미국에 창궐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있다. 미 농무부(USDA)는 지난달까지 미국 47개 주 농가에서 5800만 마리의 조류가 살처분됐다. 이 중 약 4700만마리가 닭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계란 생산량은 전년 대비 4~5%가량 줄었다.

계란 수요는 폭증했다. 미국에선 성탄절과 추수감사절 등으로 인해 매년 겨울마다 계란 수요가 급증한다. 집마다 명절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서비스 비용이 급증하자 외식을 줄인 탓에 계란 소매 수요가 급증했다. 오는 4월 부활절을 맞아 수요가 폭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요가 급증해도 공급이 이를 맞추지 못했다. 미국 농가에 일손이 부족해서다. 코로나19로 인해 노동력이 대거 이탈하면서 발생한 사태다. 미주리주(州)의 캐클 양계장을 운영하는 제프 스미스 대표는 "지난 3년간 양계장을 증축하려 노동자 임금을 대폭 늘렸지만, 양계장에 찾아오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고 했다.

자급자족하려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걸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라지고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면 키우던 닭을 버리는 소비자가 나타날 거란 우려에서다.

유기된 닭을 보호하는 시카고 루 크루의 설립자 줄리아 마그누스는 "병아리를 대량 구매했다가 계란값이 다시 인하하면 닭을 버리는 현상이 미전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며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코로나19 초기에도 버려진 새가 급증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