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맞서기 위해 녹색산업 투자에 대한 보조 지급 규칙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의 그린딜 산업계획 초안을 확보해 "유럽 당국이 역내 녹색산업 활성화를 위해 세액공제 항목 신설 등 보조금 규칙을 완화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그린딜 산업계획은 그간 EU가 밝혀온 핵심원자재법(CRMA),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 등 입법 추진 내용을 포괄한다고 FT는 설명했다.

그린딜 산업계획의 목적은 EU 집행위 승인 없이 회원국들의 보조금 집행을 허용하는 일괄면제 조항을 확대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회원국 정부가 수소, 탄소포집 등 청정산업에 보조금을 더 쉽게 줄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EU 집행위는 태양광, 풍력, 히트펌프, 그린수소,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의 역내 생산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2030년까지 총 1700억유로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번 초안에 따르면 보조금 지급 대상은 그린수소, 바이오연료 등으로 대폭 확대된다. 코로나19 회복을 위해 마련한 넥스트제너레이션 기금 8000억유로의 일부도 세액공제 대상으로 전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또 유럽 공동이익 프로젝트(IPCEI)의 승인 절차를 단순화하는 내용도 담긴다.

FT는 "EU 당국은 회원국 간 보조금 경쟁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이번 그린딜 산업계획을 추진 하고 있다"며 "미국 IRA의 단순성을 그대로 따라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EU에 관련 보조금이 이미 마련돼 있어도 자금조달 체계가 복잡해 사업을 확장할 만큼 충분한 지원을 받는 게 어렵다"는 유럽 청정기술 기업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데 방점을 둔다는 의미다.

EU는 지난해 미국이 IRA를 발효시킨 직후부터 줄곧 차별 조항에 대한 수정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양측의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판단에 따라 각종 지원법으로 맞불을 놓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내달 그린딜 산업계획을 채택하고, 오는 3월 세부 법안을 구체적으로 공개할 방침이다.

다만 보조금 규칙 완화에 따른 회원국 간 형평성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남유럽 국가들은 청정기술 기업을 많이 보유한 북유럽, 중부유럽 국가들이 보조금을 독식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코로나19 이후 도입된 역내 원조의 77%를 독일,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