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금리 조정을 앞두고 국제 유가가 하루 만에 2% 이상 내렸다.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이 건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가 하락세가 거세졌다.

30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3월물)의 배럴당 가격은 전 장보다 2.23% 하락한 77.9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4일 이후 약 4주 만에 하락 폭이 가장 컸다. 유럽 유가 기존으로 통용되는 브렌트유 선물(3월물) 가격은 전 장보다 2.20% 내려간 84.50달러를 기록했다. 두 유가 모두 이틀 연속 하락했다.

오는 1일 열릴 미국 중앙은행(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가까워지면서 유가가 떨어졌다. 월가에선 이 회의 후 Fed가 기준금리를 25bp(1bp=0.01%)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음 날인 2일엔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과 유럽중앙은행(ECB)도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 이들 은행은 기준금리를 50bp 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BOK파이낸셜의 데니스 키슬러 거래부문 수석 부사장은 “지난 2주간 금리 인상이 (원유) 수요를 더 빠르게 둔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위험 회피 심리가 (시장에)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美 금리 결정·OPEC+ 회의 앞두고 유가 2% 넘게 하락 [오늘의 유가 동향]
러시아산 원유가 시장에 꾸준히 공급되고 있다는 점도 유가 하락 요인이다. 오는 1~10일 러시아 발트해 항구에서 러시아산 원유인 우랄유와 켑코유(카자흐스탄 수출 혼합유) 선적량은 100만톤으로 전월 동기 수준(90만톤)을 웃돌 전망이다. 올 1월 선적량은 전월 대비 50% 늘었다. 서방의 제재로 유럽에서 팔리지 못한 러시아산 원유가 아시아 시장에서 풀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4개월 연속으로 원유 공급가를 낮출 것이란 소식도 유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국영 에너지 기업인 아람코는 아시아 고객들을 대상으로 오는 3월 선적 화물에 대해 원유 공식 판매가를 약 30센트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비롯한 산유국 모임인 OPEC플러스(OPEC+)가 1일 회의에서 원유 생산량을 유지할 것이란 보도도 냈다.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소비 추세가 단시간 내에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산유국들이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이란과 이스라엘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은 유가 상승 요인이지만 이날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지난 28일 이란 중부 내륙 도시인 아스파한 인근의 군사시설이 정체불명의 드론 공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드론 공습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정보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에너지 투자업체인 벨런데라 에너지는 “석유 투자자들은 유가 흐름을 꺾지 못한 긴장 상태들을 겪은 뒤 지정학적 피로를 느끼고 있다”며 “지정학적 긴장만으론 석유 흐름이 제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가가 올해 바닥을 찍었다는 월가 의견도 나왔다. 30일 야후파이낸스에 따르면 RBC캐피털마켓은 이날 “WTI와 브렌유는 지난 12월부터 큰 가격 변동 없이 거래되고 있지만 구리와 철, 알루미늄, 니켈 등의 가격은 급격히 올랐다”며 “올해 유가 최저치가 3주 전에 봤던 72달러로 찍히더라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고 짚었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이슈가 점차 유가에 상승 압박을 줄 것이란 설명이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